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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비서님은 애인 없어요?”

“하하~! 내 앞에 앉아 있잖아.”

 

준우는 유쾌한 웃음과 함께 농담 같은 말투를 흘렸다. 궁금해서 물어 보았던 수진이 홍조를 띠며 하얗게 눈을 흘겼다. 비록 그의 말이 농담이라고 했어도 그녀는 공연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자존심으로 도도한 태도를 보였던 그녀는 비로소 준우에 대한 적대감정이 사라졌다. 아니 부담스럽지 않고 도리어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온 사람처럼 그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준우는 수진이 환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그녀도 자신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문득 집안 식구들 중에 수정이 혼자만 유달리 생모를 찾는 까닭이 궁금했다. 그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면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생모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알아 낼 수 있는 기회였다.

 

“수진 씨, 생모가 병원에 있다는데, 자주 찾아가 보고 있어요?”

“우리 엄마를 어떻게 아세요?”

“우연히 병원에서 수정 이를 만나게 돼서.”

“수정 이를 병원에서 만났다고요?”

 

“수정 이는 자주 어머니를 찾아 가는 것 같던데, 어머니를 끔찍이도 생각하는 모양이야. 수진 씨는 어머니 생각 안나요?”

“가끔은.......! 하지만 내가 찾아 간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요. 수정인 어릴 때 떠난 엄마를 잊지 못할 거예요. 엄마도 막내인 수정일 무척 귀여워했고.........”

 

“그래도 생모인데. 수진 씨도 찾아가 보는 게 도리가 아닌가! 어머님은 이혼하기 전에 병원에 입원 한 건가.........?

“아뇨! 엄마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병원에 입원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이런 말 물어 봐도 될는지 모르지만, 부모님이 왜 이혼을.........?”

 

준우는 수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진은 집안 사정에 대해 말해도 괜찮은 건지 망설였다. 그녀는 부모님의 이혼을 두려움 없이 받아 들였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격이 나무나 대조적이어서 항상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불같은 아버지의 성격에 비해 어머니는 결단성이 없고 연악하기만 했다. 그녀는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담담한 말투를 흘렸다.

 

“부모님이지만, 부부간의 문제에 자식이 간섭할 수는 없었어요. 어머니는 귀가 여려서 남에게 잘 이용당하고 친정 식구들을 많이 도와주었어요. 그때마다 아버지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었고. 결국은 엄마가 빚보증을 해준 외삼촌이 부도가 나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혼을 했나........!?”

“아뇨! 처음에 아버지는 부채관계 때문에 어머니와 서류상 이혼한다고 했었어요. 그러다가 결국에는 두 분이 이별하게 되고 타격을 받은 어머니는 정신이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지요.”

“아버지가 너무 냉혹하군. 두 분이 어떻게 만났는데?”

 

“같은 동네에 살았다고 하더군요.”

“그럼 처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을 텐데!”

“사랑!? 사랑이 인생 전체를 책임 질 수는 없잖아요. 사랑하는 감정이 영원할 수도 없고, 나는 사랑 때문에 상대의 인생을 옭아매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나라 사람은 너무 보수적이에요. 순간의 감정으로 늙어 죽을 때까지 책임지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해요.”

 

준우는 순수하게만 보였던 수진이 의외로 자유 분망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에 다소 놀라웠다. 그는 수진이 예술을 하는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수진이나 수정, 두자매가 같은 성격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준우는 그녀의 생각에 동조 할 수 없었다.

 

“두 자매가 똑같은 성격인 것 같군. 그렇지만 어차피 우리는 한국 사람이고, 책임감 없는 사랑은 이기적인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난 한국을 떠나고 싶어요. 부담 없는 사람 만나서 순간적인 감정에 충실하고........우리나라는 남녀 사이에 애정 표시도 너무 자유롭지 못해요. 억제한다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을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부모의 이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수진 씨를 낳아준 생모에 대한 애착이 없어!? 그래도 수진 씨를 낳아준 어머니인데.........”

“엄마는 엄마의 인생이 있고, 저는 저의 삶이 있어요. 엄마의 살 속에 갇혀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게 말하지만 수진은 시선을 돌리고 잠시 생각을 했다. 그녀라고 생모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머니를 생각함으로서 약해지는 자신이 싫었던 것이었다. 아니 같이 고통스러워한다고 세상은 달라질 것이 없다는 그녀의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속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싶었다. 그녀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시간이 많이 지났네. 내가 너무 쓸데없는 얘기를 했나 봐요. 갈게요.”

“시간이 되면 식사라도 같이 했으면 좋을 텐데. 하여튼 내가 수진 씨에게 관심이 많다는 걸 알아 줬으면 좋겠어........”

 

“저도 좋았어요. 다음 기회에 술 한 잔 해요.” 

“그러면 더욱 고맙고........”

 

다시 손목시계를 들여다 본 수진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집어 들고 부리나케 일어섰다. 커피숍을 나온 그녀는 준우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준우는 스커트 자락을 찰랑거리며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다음 목표의 첫 발을 내디딘 셈이었다.

 

수진과 헤어진 준우는 회사로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층 로비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던 그가 멈추어 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작은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수정의 모습이 들어났다. 준우를 발견한 그녀가 짧은 스커트를 찰랑거리며 상큼한 미소를 짓고 다가왔다.

 

“오빠! 어디 갔다 와?”

“미라는 웬일이냐?”

 

“아빠한테 용돈 타러 왔어.”

“너, 집에도 안 들어오고, 말썽만 피는데, 아빠가 돈을 줘?”

 

“헤헤~! 잔소리는 해도, 용돈은 받았어.”

“집에서 걱정하니, 일찍 들어와라.”

 

준우는 싱긋이 웃으면서 발걸음을 돌리면서 수정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그는 그녀를 뒤로 하고 부지런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때 수정이 뒤 쫓아와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오빠! 저녁에 뭐해?”

“오늘.........! 집에 퇴근해야지.”

 

“내 부탁, 하나 들어 줄 수 있어?”

“뭔데.......!”

 

“친구들하고 클럽에 가기로 했는데, 오빠가 남자친구 역할 좀 해주면 안 돼?”

“아버지 집에 퇴근시켜야 돼.”

 

“퇴근하고 나서 만날 수 없어?”

“피곤한데........”

 

수정이 준우의 대답을 재촉하며 팔을 흔들었다. 사실 준우는 퇴근 후에 다시 집에서 나오기가 귀찮았다. 그리고 밖으로 떠도는 수정과 어울린다는 것을 식구들이 눈치 채면 입장만 곤란해질 것 같았다. 수정이 쌜쭉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준우의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피 잇~! 그러지 말고 한번만 부탁 들어줘. 쓸데없는 남자들이 귀찮게 한단 말이야.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하하~! 미라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오빠! 이 잉. 오빠도 나 미워하지......?”

 

준우는 토라진 표정으로 매달리는 수정이 무척 귀엽게 느꼈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숨을 쉴 때마다 들어나는 볼록한 젖가슴, 짧은 스커트 밑의 뽀얀 허벅지. 껴안으면 터질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이었다. 조금은 불량스러워 보이기는 해도 풋풋하고 청순한 그녀의 모습에 준우는 빙긋이 웃었다.

 

“밉기는! 집에서 걱정하니 그렇지........”

“집에서 말썽 피운다고 잔소리 듣고 있는 것보다 났잖아.”

 

“알았어. 일곱 시 지나서 전화해.”

“헤헤~! 고마워.”

 

준우는 마지못해 수정의 요구를 승낙하였다. 그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장 사장을 태우고 퇴근하였다. 장 사장이 정원을 살피는 동안 그가 거실로 들어서니 진숙이 밝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진숙은 은근히 준우와 은밀한 관계가 다시 갖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장 사장이 집을 비우는 날이 없어 그녀는 애만 태우고 있었다.

 

“민 비서, 혼자 퇴근한 거야?”

“아뇨.”

 

준우의 대답에 진숙은 실망하였다. 그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이어 장 사장이 뒤쫓아 들어왔다. 밝았던 그녀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준우와 정사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그녀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남편과 같이 퇴근한 시간이후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자연스럽게 업무시간의 그를 만날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강릉댁이 벌써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식구들이 하나둘 주방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일찍 집에 들어와 있던 수진이 거실로 나왔다. 준우와 시선을 마주한 그녀는 예전처럼 도도한 표정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그녀의 변화된 마음을 식구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식사준비를 하던 강릉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수정인, 오늘도 늦게 들어오는 모양이네요.........”

“..........”

 

아무도 강릉댁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수정을 만나기로 한 준우만이 혼자 자격지심이 들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실에 앉아 있던 준우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수정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만날 약속장소를 알려온 것이었다. 전화를 받고 잠시 주춤거리던 그가 주방으로 들어가는 장 사장에게 다가섰다.

 

“저.......저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 나갔다 오겠습니다.”

“음. 그래! 다녀와.”

 

장 사장이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꾸벅인 준우는 머쓱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진숙과 수진이 그에게 시선을 향했다. 수진은 이제까지 그가 퇴근 후에 외출을 하는 경우가 없었기에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준우는 그녀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집을 나온 준우는 대로변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탔다. 

 

한 시간 가량이 지난 후, 수정을 만난 준우는 요란한 록밴드의 음악소리와 사이키 조명이 눈부신 클럽 안에 있었다. 남자 파트너를 동반한 수정의 두 명의 친구들은 각자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면서 젊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준우도 수정의 이끌림에 스테이지로 나가서 무리 속에 섞여 있다가 테이블로 와서 앉았다. 수정이 대뜸 그의 팔을 끌어 당겨 자신의 목에 감았다.

 

“오빠, 생각보다 멋져. 리듬도 잘 타고. 나, 기분 최고야.”

“다행이구나.”

 

“오빠가 자꾸 좋아지는 걸.”

“이런 곳에만 다니지 말고 공부도 해야지. 미라는 졸업반이잖아.”

 

수정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큰 눈동자를 글리며 눈을 흘겼다. 그리고 마치 연인처럼 준우의 팔을 당겨 목을 감게 하고 그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맥주 몇 잔을 마신 상태인 그녀가 다시 맥주잔을 들어 마셨다. 거품이 묻어난 그녀의 입술이 조명등 불빛에 유난히 붉게 들어났다. 

 

“피 잇! 난 대학 안가고 의상공부 할거야. 오빠는 이제부터 내 파트너니까, 꼼짝 말라야.”

“하하~! 쪼그만 아가씨가 협박이네.”

 

“아까, 인사한 그 여자 누구야?”

“아! 다른 회사 여직원.”

“그런데 그렇게 다정하게 인사를 해? 한눈만 팔아봐, 가만 안둘 거야.”

 

준우는 토라진 표정을 짓는 수정이 무척 앙증맞게 보였다. 그는 자신의 팔을 목에 감고 가슴 속을 파고드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녀가 커다란 눈동자로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표정으로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앉은 주변에는 젊은 남녀들이 쌍쌍이 앉아 웃고 떠들고 있었다. 서로 껴안고 스킨십을 하는 연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던 수정이 불쑥 일어섰다. 맥주잔을 집어 들던 준우가 흠칫하였다. 대담하게도 수정이 무릎위에 털썩 올라앉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그녀는 준우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당황한 준우는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긴속눈썹을 깜박거리는 검은 수정의 큰 눈망울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릎위에 앉은 그녀의 가벼운 체중을 의식하는 준우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늘어진 티셔츠 속에 들어난 젖가슴이 보이고 그녀의 둔부가 페니스를 깔고 앉은 상태였다.

 

“오빠. 안아줘.”

“...........!”

 

수정이 속삭이듯이 말하며 허리로 준우의 손을 당겼다. 그리고 수정이 다시 준우의 입술을 찾았다. 그녀의 당돌한 태도에 그는 이성을 잃을 정도였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고 그녀의 혀가 그의 입술 사이로 들어왔다. 아니 그가 그녀의 혀를 빨아 당긴 것이다. 그녀의 허리로 당겨진 그의 손이 셔츠 속을 더듬었다.

 

땀에 젖은 수정의 브래지어가 밀려 올라갔다. 준우의 손바닥에 그녀의 아담하고도 탄력 있는 젖가슴이 쥐어졌다. 이성을 마비시킬 듯이 요란한 음악소리, 사이키 조명이 번쩍이는 클럽의 분위기는 알코올에 달아오른 그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그의 손길은 가쁜 숨소리를 흘리며 가슴을 파고드는 그녀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앙증맞은 수정의 둔부가 준우의 손아귀에서 꼼틀거렸다. 그때 홀로 나갔던 수정의 친구 영미가 파트너와 함께 테이블로 돌아왔다. 부둥켜 껴안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던 영미가 피식하고 웃었다.

 

“호 홋~! 미라, 이런 모습 처음 본다.”

“...........!?”

 

영미의 목소리에 수정이 발딱 일어나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영미에게 눈을 흘겼다. 영미가 의미 있는 눈빛으로 자신의 파트너 남자친구를 쳐다보더니 야유를 하였다.

 

“차라리 호텔로 가라. 애구! 달아올랐네. 달아올랐어.”

“계집애! 까불고 있어.”

 

눈을 흘기는 수정과 영미는 마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수정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준우의 팔을 당겨 자신의 허리를 감싸게 했다. 준우는 머쓱한 표정으로 맥주잔을 들어 기울였다. 그때 준우는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의 벨소리가 들리는 것을 의식했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준우는 여러 번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전화를 받을 수 없기에 그는 황급히 홀 안을 빠져 나와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는 혹시 회사에서 긴급한 연락이라도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무적이고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 준우 씨! 아닙니까?”

“네 맞는데요. 어디신데요?”

 

“아! 여기 XX정신병원입니다. 민정아씨 보호자 되시지요?”

“네. 그런데요. 무슨 일입니까?”

 

술기운과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준우는 조금은 귀찮다는 생각을 했다. 입맛을 다신 그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한편으로 조금은 당황하는 상대방의 말에 그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정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그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병원으로 와 주셔야겠습니다.”

“이 밤중에........!? 왜 그러시는데요?”

 

준우는 술기운이 깨는 것 같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들고 있는 핸드폰을 고쳐 잡고 귀에 바짝 붙였다. 그리고 상대방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다시 물었다.

 

“정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민 정아 씨가 옥상에서 투신했습니다.”

 

“무슨 말.......!? 투신이라니요?”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하여튼 XX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는데 생명이 위급한 상태이라고 보호자를 오라고 합니다.”

“그, 그럴 리가.......”

 

준우는 갑자기 상대방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아가 자살을 했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단 하나 남은 피붙이였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주위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유령처럼 느껴졌다. 그는 ‘안 돼!’ 라는 혼잣말을 흘리며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수정이 그의 허리에 매달렸다.

 

“오빠! 뭐해? 빨리 들어가.”

“정아가! 정아가.........”

 

수정은 귀신에 홀린 듯이 허수아비처럼 서 있는 준우를 의아스럽게 바라봤다. 그녀는 그의 여동생 이름이 정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술기운으로 눈가가 발그스름한 그녀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무슨 말이야?”

“내 동생.......내 동생, 정아가! 위독해.........”

 

그 한마디를 뱉어놓고 준우는 부리나케 걸음을 옮겼다. 그의 여동생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수정은 그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수정의 곁을 떠나 클럽을 나온 그는 대로변으로 뛰어나갔다. 도로변에서 누군가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우고 있었다. 그는 택시를 타려는 사람을 밀어내고 먼저 올라탔다.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준우는 안절부절 하였다. 택시가 병원에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택시에서 내린 그는 한 걸음에 달려서 응급실로 들어갔다. 그를 맞이한 의료진들은 암울한 표정을 지었다. 정아는 이미 하얀 천에 덮여 병상에 누워있었다. 준우는 하얀 천을 벗겨내고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정아는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죽어서도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준우는 세상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차갑게 식어가는 정아의 손을 붙잡았다. 티 없이 맑고 명랑하던 정아는 행복의 의미도 모르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꽃도 피워 보지 못하고 삶을 마친 정아를 생각하며 준우는 흐느껴 울었다.

 

인간은 왜 태어났는지 모른 채 태어났다.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 모른 채로 살아간다. 그리고 왜 죽는지, 어떻게 죽어야 의미 있는 죽음인지도 모르고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다. 정아의 죽음은 준우에게 크나 큰 고통이었다. 그 고통은 그가 해야 할 일들을 깊게 새겨 준 것이었다.

 

삼일 후에 준우는 어머니 산소가 있는 야산 기슭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는 어머니와 이모의 산소 옆에 정아의 무덤을 만든 것이다. 그에게 원한을 갚아달라고 하듯이 흰나비들이 주위를 날고 있고, 시야 멀리로는 북한강의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한동안 넋을 잃고 있던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되새겼다. 그것은 여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그들에게 고통을 되돌려 주는 것이었다.

 

태양이 기울어가도 준우는 망부석처럼 꼼짝하지 않고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정아가 괴로워 할 동안 너무나 안이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자멸감에 휩싸였다. 좀 더 적극적으로 여동생을 보살피지 못한 자책감이었다. 그 자책감은 가슴 속에 새겨져 있던 어머니와 이모의 죽음을 다시 일깨워 주는 불꽃이었다.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그의 모습은 오랫동안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무덥던 여름의 끝에서 입추가 지나 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진한 초록의 가로수가 줄지어 늘어선 가로수 밑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가롭게 움직인다. 서울에 인접한 성남의 대로는 차량들로 혼잡하였다. 차량들의 물결 속에 승용차 한 대가 대로변에 멈추어 섰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진한갈색 선글라스를 낀 준우의 모습이었다.

 

승용차에 내려선 준우는 대로변의 건물들을 훑어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주변에 부유층의 저택들이 운집하고 있는 도로변에는 높고 낮은 건물들이 즐비하였다. 남한산성 입구로 향하는 도로로서 특히 여러 개의 모텔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모텔들 중에 정원까지 갖추어진 건물 벽에는 조각으로 ‘화이트 하우스’라는 간판이 들어나 보인다. 그리고 도로변 건물 중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건물은 대형 슈퍼마켓이었다. 이미 여러 번 이곳을 다녀간 준우는 슈퍼마켓과 ‘화이트 하우스’의 간판을 걸린 모텔이 조 창식의 소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동안 모텔과 대형 슈퍼마켓을 살피던 준우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마치 자신의 부를 빼앗길 것이 두려운 듯이 높게 세워진 저택의 담장이 골목길을 에워싸고 있었다. 골목 깊숙이 들어가서 저택이 즐비한 좌측 끝으로 야트막한 동산이 있었다. 공원으로 사용하는 동산 앞에는 아름드리 노송을 등지고 규모가 큰 이층 저택들이 웅크리고 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선 준우는 저택들 중에 정원이 들여다보이는 철문 앞에 멈추어 섰다. 그가 요즘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조 창식의 저택이었다. 골목안의 저택들을 눈여겨보면 외부인의 침입에 대비하여 방범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주변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일거일동이 CCTV를 비롯한 초 첨단 장비들의 감시를 받고 있다. 

 

준우는 장 인호와 조창식이 어떻게 한 밤중에 침입했는지 살폈었다. 그는 그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기 위해 조 창식의 집으로 숨어 들어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은밀하게 숨겨진 방법시스템이 문제였다. 그들이 알지 못하게 숨어들기는 쉽지 않았다. 저택 뒤로 돌아간 그는 아름드리나무 밑에 섰다. 조 창식의 저택 지붕으로 뻗어 있는 굵은 나뭇가지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준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래! 나무 가지를 이용해 지붕으로 올라가면 CCTV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준우는 이내 실망하였다. 지붕을 타고 창문으로 들어가려하지만, 발각되지 않고 어떻게 잠겨있는 창문을 열고 들어 갈 것인가? 이 시간쯤이면 조 창식의 딸인 혜림과 은지는 집안에 없고 가정부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그는 저택 주변을 둘러보고 천천히 골목을 벗어났다.

 

골목을 나선 준우는 슈퍼마켓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화이트 하우스’ 모텔로 걸음을 옮겼다.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여자들, 허벅지를 들어내며 짧은 옷을 걸친 여자들, 팔짱을 끼고 가는 젊음 연인들, 가방을 둘러멘 학생들, 제각기 제 삶에 바쁜 그들 모두가 그를 의심하거나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모텔 간판을 올려다보며 걷던 준우가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와 마주하여 걸어오던 여인도 멈추어 섰다. 무릎 밑으로 찰랑거리는 플레어스커트를 걸친 여인은 다름 아닌 황 은지였다. 그녀가 그를 향해 몇 발자국 다가서며 놀라는 눈빛을 했다.

 

“준우 씨! 여기는 웬일로.......!?”

“은지........!”

 

은지는 자신의 동네에서 준우를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를 만나게 된 것이 의외라고 생각한 그녀는 쑥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혹시나 동네 사람들에게 낯선 남자를 만나는 장면을 보이게 될 것이 두려워서 주위를 살폈다.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조 창식의 주변을 살피던 준우도 그녀를 만나리라고는 예상치 못해 조금은 당황했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차 한 잔 할 수 있어?”

“.........응.”

 

망설이던 은지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대답했다. 그들은 옆 건물에 보이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은지는 혹시나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는 않는지 스커트 자락을 추슬렀다. 준우가 음료수를 시키며 눈빛으로 그녀의 의향을 물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업원이 주문한 음료수를 탁자위에 가져다 놓았다.

 

그들은 말없이 눈빛만 교환하며 음료수 잔을 들어 한 모금씩 마셨다. 은지는 자신의 의지대로 준우의 여자가 된 후에 한 동안 그를 잊고 있었다. 아니 애써 잊으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그를 대하고 보니 가슴속에 살아 숨 쉬던 그에 대한 애정이 새롭게 살아났다. ‘그는 나를 여자로 만들어준 남자야!’ 그녀는 새삼스럽게 그를 받아 드리고 황홀했던 순간을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준우가 어색한 웃음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만나서 반가워. 요즘 어떻게 지냈어?”

“그냥..........”

 

은지는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곰곰이 생각을 했다.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를 잊어야 하는데, 왜 이러지? 준우 씨도 나를 보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닌지, 그러나 문득 그녀는 불길한 생각에 휩싸였다. 그녀는 그의 가족을 헤치고 고통스럽게 만든 장본인이 남편일 것이라는 예측을 했었다. 그가 직접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두려운 예감을 느꼈다

 

 

 

예기치 않은 준우와의 만남에 반가웠던 은지는 돌연히 긴장하였다. 그가 남편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은 아닌지. 남편에 대한 그의 복수는 그녀가 남편을 사랑할 수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고 또 다른 불행이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그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그날.......나를.........사랑한 게 아니었어?”

“무슨 말을........!?”

 

은지는 자신이 묻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준우의 표정을 빤히 바라봤다. 물론 그녀는 그가 자신을 사랑했던 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그의 또 다른 생각을 알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판단하는 그의 생각이 잘못이 아닌지 두려웠다. 아니 그녀는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그녀는 검게 드리워지는 의혹을 간직하고 있을 수 없었다.

 

“준우 씨가 말하던.......준우 씨 가족을 헤친 사람이.......내 남편이잖아?”

“...........”

 

준우는 대답하지 않고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은지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계획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태도는 긍정일 수도 있고 부정일 수도 있었다. 그는 한쪽 팔로 머리를 짚고 음료수 잔을 빙빙 돌렸다. 마치 깊은 고뇌에 바진 것 같은 그의 모습이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물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잖아?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은지는 결혼했지만, 남편은 약속도 지키지 않았고........”

“그건 준우 씨와 관계없는 일이야. 내 말이.......사실이냐고?”

 

“은지가 신경 쓸 필요 없어. 은지의 인생과 관계없는 일이고........”

“어쩌려고 그래........?”

 

준우는 여전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은지의 눈가에 이슬이 번졌다. 그는 결코 그녀의 의문을 풀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그의 가족에게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남편에게 어떤 복수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어 두려웠다.

 

은지는 그렇다고 준우를 원망할 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더욱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그녀의 마음 속 한편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남편에게 그가 복수를 해주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흠칫 놀랬다. 은지는 준우에게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준우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은지를 사랑했기에....... 행복했으면 좋겠어.”

“............”

 

준우가 커피숍을 나가고 은지는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취해야할 태도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거의 의무적으로 살아가는 부부생활에서 그녀는 알 수 없는 예감을 남편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준우의 남편에 대한 원한은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찰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십 여분 후, 조창식의 대문 앞에 방범 회사 마크가 달린 제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돋보기안경을 착용한 남자는 무척 어눌한 표정으로 얼 띤 모습이었다. 장비가 든 손가방을 든 남자가 초인종을 눌렀다. 스피커를 통해 나이 듬직한 가정부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누구세요?”

“케이지 방범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시스템에 오류가 생겨 수리하러 왔습니다.”

“기다리쇼.”

 

모자 밑으로 들어난 남자는 민 준우가 변장한 모습이었다. 모니터의 액정화면에 나타난 가정부는 전혀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는 굳게 닫혔던 철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거침없이 정원을 가로 질러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예상대로 은지가 없는 집안에는 가정부 혼자였다. 나이가 많은 가정부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난 잘 모르지만, 무슨 고장이유?”

“네. 오류가 나면 본사에 신호가 옵니다. 살펴보고 수리하겠습니다.”

“그러쇼! 젊은 양반이 고생하는구려.”

 

가정부는 친절하게 인사까지 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준우는 가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밖으로 나와 창문과 벽에 설치된 보안장치들을 살폈다. 그가 예상한대로 집안 곳곳에는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CCTV에 노출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복면을 하고 들어 올 것이고, 오히려 모든 행동이 조 창식에게 전달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저택 밖의 보안시설을 파악한 준우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과 방들의 창문을 살핀 그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에는 서재와 또 다른 방문들이 보였다. 그는 공원으로 향한 작은 방문을 열고 살폈다. 이층에 설치된 욕실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욕실의 높게 달린 창문을 열어 놓았다.

 

욕실을 나온 준우는 옆의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젊은 처녀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방이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책상위에 국내 체조대회에서 수상한 트로피와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액자 속에 들어 있는 상큼한 표정의 얼굴은 준우의 표적인 혜림의 발랄한 표정이 담겨 있다. 체조복을 걸친 그녀의 모습이 무척 생기가 돋아나고 선정적이었다. 몸매가 들어나 보이는 그녀의 몸매는 날씬하고 터질 것 같았다.

 

모포가 흐트러져 있는 침대에서는 여자의 진한 체취가 풍기고, 급하게 정리하고 나간 벽의 옷걸이에는 손바닥만한 팬티와 시선을 자극하는 브래지어, 그리고 속옷들이 걸려 있었다. 준우는 침대 앞을 지나 닫혀있는 창문을 밀어 보았다. 잠금장치가 걸린 창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준우는 여유로운 태도로 들고 온 손가방을 열었다. 그는 장비를 꺼내 잠금장치의 나사를 풀어냈다. 그리고 잠금장치를 잘라내고 다시 나사를 조였다. 겉으로 보아서는 전혀 망가진 것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창문을 열고 창문턱에 올라선 그는 지붕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올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했다.

 

그동안 준비했던 조 창식에 대한 보복을 실행할 생각을 하는 준우는 다소 긴장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이층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가정부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조 창식의 저택을 나섰다.

 

모든 사람들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도시에는 어김없이 밤이 찾아왔다. 승용차 한 대가 조 창식의 저택이 보이는 어두운 골목길에 들어와 멈추어 섰다. 그리고 승용차의 헤드라이트가 꺼졌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승용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났다. 조수석의 여자는 국가대표 선발을 위해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는 조 창식의 딸 혜림이었다. 운전석의 남자는 그녀의 연인인 이 정민이었다. 이 정민은 사법연수생으로 조 창식에게도 인정을 받고 그녀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운전석의 정민이 가볍게 팔을 뻗어 혜림의 어깨를 감쌌다. 시선을 마주한 그들은 정겨운 눈빛을 교환하였다. 정민이 혜림을 끌어당기며 입술을 찾았다. 혜림은 눈을 사르르 감고 그의 입술을 기다fut다. 그들은 서로를 포옹하고 키스를 했다. 농도 깊은 키스로 이어지고 그녀는 입술을 헤집고 들어오는 남자의 혀를 받아드리며 눈을 흘겼다. 키스가 끝나고 남자는 아쉬워했다.

 

“혜림 씨하고 같이 있고 싶어. 우리 이대로 여행을 떠날까?”

“싫어! 결혼 전까지는 안 돼! 훈련도 해야 하고,.......”

 

혜림은 눈을 흘기며 남자를 밀어냈다. 그녀가 승용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승용차 안의 남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그녀가 자신의 집 앞으로 다가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그녀는 열리는 철문 안으로 들어섰다. 승용차 안의 남자는 그녀의 자취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멈추어 있던 승용차가 사라지고 전신주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들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던 민 준우였다.

 

작은 등산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 준우는 빠른 걸음으로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어두워진 공원에는 인적이 없었다. 그는 조 창식의 지붕으로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로 어렵지 않게 올라갔다. 그는 이제 시간을 기다릴 셈이다. 검은 그림자가 되어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그는 등에 멘 가방에서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망원경 안으로 조 창식의 저택 창문들이 들어왔다. 준우는 이층 창문을 향해 망원렌즈의 초점을 조절했다.

 

혜림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려는 그녀에게 가정부가 식사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식사를 하고 들어왔다고 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층계를 올라갔다. 매일 같이 훈련을 하느라고 피곤한 그녀였다. 하지만 항상 그림자처럼 옆에서 챙겨주며 사랑을 표현하는 정민이 있어 피곤함을 잊을 수 있었다.

 

자신의 방에 들어온 혜림은 들고 온 가방을 의자위에 걸쳐놓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는 훈련에서 돌아오면 젖은 땀을 씻기 위해 샤워를 하는 것이 습관이다. 브래지어와 팬티 만 걸친 그녀는 방을 나와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 들어온 그녀는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며 양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양치질을 끝낸 그녀는 서슴지 않고 팬티와 브래지어를 벗어 옷걸이에 걸쳐 놓았다. 체조로 단련된 그녀의 몸매는 날씬하고 매끄러웠다. 조각같이 들어난 젖가슴과 날렵한 곡선을 이룬 허리, 그리고 균형 잡힌 몸매에 탄력이 넘치는 그녀의 둔부가 들어났다. 물이 쏟아지는 샤워기 밑에 선 그녀는 바디 샴푸를 적신 타월로 몸을 문질렀다.

 

혜림은 타월로 발가벗은 몸을 문질러 하얀 거품을 일구어냈다. 탐스러운 젖가슴과 사타구니, 몸의 구석구석에 거품을 일으킨 그녀는 양 다리를 벌리고 섰다. 벌어진 허벅지 사이는 검은 음모가 돋아나 둔덕을 덥고 있었다. 그녀는 허벅지를 벌리고 은밀한 비역도 타월로 문질렀다. 샤워를 끝낸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매를 들여다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지도 순결을 지키고 있는 그녀였다.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혜림은 음모가 돋아난 사타구니 사이를 살며시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손바닥에 마찰 당하는 보지 입구의 살갗이 짜릿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입술을 벌리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사타구니를 마찰하는 그녀의 손이 조금씩 빨라졌다. 옅은 숨결을 흘리던 그녀는 양손으로 목을 감싸고 생각했다. 사실 그녀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상태이니 자신을 소유하고 싶은 정민의 요구를 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 전까지 순결만은 지키고 싶었다.

 

망원경을 통해 혜림의 일거일동을 보고 있던 준우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윤기가 흐르고 각선미가 돋보이는 그녀의 몸매는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수음행위를 하듯이 음부를 쓰다듬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준우는 알 도리가 없었다. 한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던 그녀가 팬티만 걸치고 욕실을 나갔다. 정적이 이어지고 나뭇가지에 앉았던 들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날아갔다.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골목 안으로 들어온 여인이 조 창식의 집으로 들어갔다. 준우는 아마도 은지가 돌아 온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어서 승용차 한 대가 골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저택 앞에 멈추었다. 차 문이 열리고 다리를 저는 남자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조 창식의 귀가하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흘러가고 준우는 오랫동안 나뭇가지를 의지하고 있던 다리가 뻐근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조 창식의 식구들이 잠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는 큰 나무 가지위로 옮겨 앉아 나무둥치에 등을 대고 편한 자세를 취했다. 자세를 고쳐 앉은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얼마동안인가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하던 그는 긴장을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을까, 조 창식의 저택 창문을 밝히던 불빛들이 사라져 있었다. 준우는 결코 서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십 여분이 더 지나간 후에 그는 슬그머니 나뭇가지에서 일어섰다. 그는 가방에서 스타킹을 꺼내 얼굴위에 뒤집어썼다. 그리고 수술용 장갑위에 헝겊으로 된 장갑 하나를 더 끼고 조심스럽게 나뭇가지에 매달렸다. 예상보다 그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휘청거렸다.

 

나뭇가지 끝까지 이동한 준우는 조 창식의 저택 지붕으로 사뿐히 뛰어 내렸다. 그리고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빛만 반짝이고 누구도 그의 행동을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예민한 발걸음으로 지붕 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밧줄을 꺼내 솟아있는 벽난로 굴뚝에 옭아매었다.

 

준우는 고양이처럼 벽에 붙어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그때 털썩하는 소리에 그는 급히 숨을 들이마시며 시각을 곤두세웠다. 굴뚝에 옭아 멘 밧줄에 걸린 기왓장이 떨어진 것이다. 잠시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어둠에 쌓인 주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다시 밧줄에 매달린 그의 발끝이 닿은 곳은 혜림의 창문이었다. 그녀가 잠들었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그는 창문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재빨리 벽에 몸을 붙였다. 일초, 이초..... 시간이 흘러가도 창문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그는 훈련에 피곤했던 그녀가 쉽게 잠든 것이라고 판단했다.

 

창문 틈으로 드라이버를 넣은 준우는 천천히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미 그가 잠금장치를 해제해 놓은 창문이 열리면서 삐거덕 소리를 냈다. 긴장한 그는 동작을 멈추고 예민하게 귀를 기울였다. 열어놓은 창문안의 커튼이 흔들릴 뿐 주위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커튼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검은 그림자가 빨려 들어가듯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준우는 잠시 숨을 멈추고 방안의 사태를 관찰하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불빛아래 침대위에서 잠들어 있는 혜림의 자태가 들어나 보였다. 무척 피곤했는지 그녀는 모포를 허벅지 사이에 끼고 잠들어 있었다. 그는 침대 앞으로 발돋움을 해서 걸어갔다. 속이 훤히 비치는 잠옷 차림으로 잠들어 있는 그녀를 보고 그는 잠시 죄의식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에 잠겨 있을 여유가 없었다. 처참하게 죽어간 가족을 생각하노라면 양심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잠옷이 걷어 올려진 그녀의 뽀얀 허벅지가 들어나 있었다. 그는 침착하게 등산 가방에서 준비한 장비들을 꺼냈다. 그는 먼저 소형 CCTV 전자 카메라를 책상위에 설치했다. 그리고 카메라의 방향이 정확한지 세심하게 살폈다. 그는 그녀를 강간하는 장면을 녹화할 생각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준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달빛에 들어나는 침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가 가방을 열려고 하다가 흠칫 놀랬다. 책상위에 있던 볼펜을 건드려 책상 밑으로 떨어트린 것이었다. 볼펜이 떨어져 방바닥에 따르륵! 구르는 소리와 동시에 그는 방바닥에 납죽 엎드렸다.

 

심장이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간이 흘러갔다. 모로 누워있던 혜림이 몸을 비틀더니 네 활개를 펴고 누웠다. 그리고 그녀는 고른 숨소리를 흘리며 다시 잠 속에 빠져 들었다. 소리 없는 한숨을 내뱉은 그는 등산 가방에서 약병과 탈지면을 꺼내들었다. 그가 꺼내든 약병에는 수면을 유도하는 강력한 마취제였다.

 

준우는 마취제를 적신 탈지면을 들고 발소리를 죽여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달빛에 비친 혜림의 얼굴이 조각처럼 들어났다. 오뚝한 콧날과 짙고 검은 눈썹, 터질 것같이 탄력 넘치는 붉은 입술, 숨을 쉴 때마다 들썩이는 그녀의 젖가슴은 탐스러웠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준우는 서슴없이 잠들어 있는 혜림의 입을 탈지면으로 눌렀다.

 

“누, 누구........뭐, 뭐 야..........”

 

잠들었던 혜림이 놀라서 버둥거렸다. 그녀는 어둠속에 복면을 한 남자를 의식하고 경악하였다. 준우는 더 이상 그녀가 반항하지 못하도록 붙들고 탈지면을 힘껏 눌렀다. 그녀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녀는 돌연하고 거센 남자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다. 돌아가는 시계의 시침 소리처럼 뚝딱거리는 맥박소리! 휘둥그렇게 뜨고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몽롱하게 감겨졌다.

 

준우는 그녀가 마취제 효과로 완전히 의식이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의 팔 다리가 축 눌어지는 것을 보고 그는 상체를 일으켰다. 헝겊장갑을 벗은 그는 수술용 고무장갑을 낀 상태로 돌아섰다. 그리고 책상위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의 스위치를 눌렀다. 이제부터 그가 하는 행동은 모두 녹화 될 것이다.

 

준우는 힐끔 책상위의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공포를 느끼게 했다. 스타킹을 뒤집어 쓴 그의 이미지는 과거에 장 인호와 조 창식의 모습을 재현한 그대로였다. 그는 다시 돌아서서 침대로 향했다. 무방비 상태로 마취제에 의해 의식을 잃고 있는 혜림의 자태에 그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준우는 혜림이 걸치고 있는 잠옷을 벗겨냈다. 그리고 팬티와 브래지어도 벗겨냈다. 아무리 복수를 하는 준우라고해도 완전히 발가벗겨진 그녀의 몸매는 욕정을 느낄 만 하였다. 리듬 체조로 단련된 그녀의 몸매! 조각 같은 젖가슴은 탐스럽고, 뽀얀 살결의 허벅지는 벌어져 달빛에 반사되는 윤기를 뿜어내는 음모가 둔덕을 덮고 있었다.

 

그는 혜림의 젖가슴을 보듬고 천천히 주물렀다. 인간의 본능은 마취 상태라도 성감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인가. 그는 그녀가 흥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시신을 관찰하듯이 장갑을 끼고 더듬는 그의 손안에 젖가슴이 보듬어졌다. 그의 손은 원을 그리며 젖가슴을 주무르기도 하고 움켜쥐었다가 마찰을 했다.

 

한동안 음미를 하듯이 젖가슴을 주무르던 준우는 젖가슴 가운데 돋아난 젖꼭지를 혀끝으로 핥았다. 그의 혀끝이 그녀의 젖꼭지를 감아 핥기 시작했다. 타액으로 적셔진 젖꼭지가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젖꼭지가 빨리는 촉감을 느끼는지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한편으로 그의 고무장갑을 낀 손은 그녀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어깨와 허리를 더듬던 그의 손이 허벅지 사이를 침범하였다.

 

“흐........읏! 아, 안....... 돼..........”

“.........!”

 

혜림이 몸을 비틀면서 잠꼬대처럼 헛소리를 흘렸다. 치켜뜬 그녀의 눈동자는 몽롱한 상태였다. 그녀는 마취 상태에서 검은 물체가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것을 의식했다. 하지만 안개 속 같은 암울함 속에 손도 발도 꼼짝할 수 없었다. 무의식 상태에서 공포를 느낀 그녀는 본능적으로 저항을 했다.

 

“누, 누구.........? 사, 살려.........줘.......”

“두려워하지 마. 네 아버지가 저지른 죄의 대가야. 네 아버지가 했던 짓이야.”

 

혜림은 복면을 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단지 그들의 말과 몸짓은 카메라 렌즈 속으로 비추어 녹화가 되고 있었다. 그녀는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알 수 없는 늪 밑으로 침몰되고 있었다. 준우는 의식 없는 그녀의 성감을 일깨우는 작업에 열중할 뿐이다. 인간의 본능을 살리는 작업이었다.

 

준우는 그녀의 젖꼭지를 줄기차게 입속으로 빨아 당기며 혀끝으로 마찰을 했다. 그리고 고무장갑을 낀 손이 그녀의 허벅지 사이를 쓰다듬었다. 음모를 쓰다듬던 그의 손끝이 보지 입구를 스치고 지나다녔다. 그리고 고무장갑의 손가락이 그녀의 보지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혜림은 무의식 상태에서도 온 몸의 신경이 한군데로 몰리는 충격을 받았다. 참을 수 없는 쾌감이었다. 한편 아물아물한 정신 속에서 치욕감을 느끼는 그녀는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손과 발은 무거운 추에 매달린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죽을힘을 다해 힘껏 소리를 질렀다.

 

“사, 살려 줘. 아, 안 돼.......”

 

하지만 혜림의 목소리는 암울한 침묵의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는 몸속으로 들어온 무엇인가가 보지속의 예민한 감각의 세포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았다. 참을 수 없는 촉감이었다. 흐린 동공의 몽롱한 눈동자를 하고 있는 혜림의 허리가 비틀렸다. 오! 신이 창조한 여인의 육체는 신비로웠다. 입속에서 유린을 당하던 젖꼭지가 도톰하게 발기를 하고 음모로 아래로 붉은 꽃잎처럼 돋아난 그녀의 보지가 촉촉하게 젖는 것이 아닌가. 준우는 복수를 하려는 인간이기 전에 욕망을 느끼는 젊은 남자였다.

 

준우의 몸은 격렬한 성욕의 불길에 휩싸였다. 아니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흉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애정이나 사랑과 다른 욕정을 느낀 그의 하복부에는 페니스가 발기되어 용틀임을 하였다. 그는 침대위에서 꼼짝도 못하는 혜림의 다리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침대 끝으로 잡아 당겼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녀는 공포를 느끼는지 파르르 떨고 있었다.

 

올려다보고 있는 혜림의 눈동자가 벌어져 있으나 시각적인 감각은 없는 상태였다. 준우는 자신도 모르게 동물적인 욕구로 가득해져 있었다. 그가 내려다보는 침대 끝에는 허벅지가 벌려진 여자의 육체가 있을 뿐이었다. 윤기 흐르는 음모로 덮인 그녀의 보지가 붉은 꽃잎처럼 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입가에 일그러진 미소를 흘린 그는 자신의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끌어내렸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혜림의 허벅지 사이를 바라보던 준우는 자신의 페니스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녀의 보지 구멍 입구에 대고 문질렀다. 페니스 귀두에 닿은 보지 살갗이 살아 움직이듯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보지 구멍 속으로 슬며시 페니스 귀두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다리를 잡아당기며 보지 속으로 페니스를 돌진시켰다.

 

“하 윽! 어, 어마 얏.........”

 

혜림의 외침은 소리 없는 고통이었다. 그녀는 몸속으로 치밀고 들어오는 거대함에 골반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충격으로 희미하게 정신이 드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뻗쳤다. 준우의 가슴을 밀어내려는 그녀의 눈동자에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 내렸다. 준우는 그녀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보지 속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가 빼내기를 반복했다.

 

비록 조 창식에 대한 복수로 그녀를 유린하지만 준우는 격렬한 쾌감을 느꼈다. 보지 속의 쫀득쫀득한 살갗이 페니스를 옥죄이는 감촉에 피가 솟구쳤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돋아난 그는 페니스로 깊고 빠르게 그녀의 보지 속을 헤집었다. 강제로 여자를 유린하는 희열은 정신이 아득할 정도였다.

 

충격을 받은 혜림은 다시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다만 통증과 함께 알 수 없는 감각이 몸 속에서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었다. 준우의 페니스가 보지 속으로 깊이 박힐 때마다 그녀의 발가벗겨진 나신이 힘없이 흔들렸다. 줄기차게 그녀를 유린하는 그는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렸다. 시간이 점점 흘러가도 긴장을 한 탓인지 그는 격한 엑스터시를 느끼면서도 오르가즘에 도달할 수 없었다.

 

참을 수없는 쾌감에 젖어든 준우는 혜림의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보지 깊숙이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페니스 귀두가 그녀의 몸 속 깊숙한 뼈끝까지 닿은 촉감을 느꼈다. 무의식중에 고통을 느끼는지 그녀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허리를 비틀었다. 그때 준우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뒤를 돌아본 그는 놀라서 급히 숨을 들이켰다.

 

“헛~!”

 

조금 열려진 방문 틈으로 누군가가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혜림의 보지 속에 페니스를 박아 넣고 있는 준우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뚫어지게 방문을 쳐다보았다. 아뿔싸! 방안을 보고 있는 사람은 하얀 잠옷차림의 은지였다. 그녀의 눈빛은 놀람과 경악, 원망이 한꺼번에 어우러져 있었다.

 

은지는 준우를 만나고 나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왠지 불길한 생각에 그녀는 그가 어떤 복수를 할지 두려웠다. 한편 그녀는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부부생활은 형식적일 뿐이었다. 의무감만 존재하는 부부의 육체관계를 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남편에게서 떠나 있었다. 그녀는 결혼하고 친정식구들을 위한 약속도 지키지 않는 남편이 저주스러웠다. 그녀는 남편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대리 만족을 느꼈다.

 

잠을 이룰 수 없어 뒤척이던 은지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엇인가 털썩하고 떨어지는 소리. 삐거덕 거리는 창문. 볼펜 구르는 소리까지 혜림의 방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잘못 들은 것인가. 소리 없이 방문을 열고 나온 그녀는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층계를 올라간 은지는 혜림의 방문에 귀를 기울였다. 말로 표현할 수없는 느낌이 방안에서 흘러 나왔다. 그녀는 두려움에 젖어 방문을 슬며시 열었다. 발가벗겨진 혜림의 나신을 붙들고 있는 복면의 남자의 모습에 그녀는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지만 은지는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움직일 수 없었다. 스타킹 속의 남자의 눈빛. 여자의 직감이랄까, 비록 복면을 했지만 남자가 다름 아닌 준우라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준우를 이해하려고 했던 그녀는 막상 닥치고 보니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가 준우라는 것을 식구들에게 알린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고 오히려 그녀 자신이 더욱 고통스러워 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어쩌면 예견한 사태였다.

 

방안의 사태에 충격을 받은 은지는 슬며시 문 뒤로 몸을 숨겼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준우는 그녀가 소리 지르거나 당황하지 않는 것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준우는 그녀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아픔을 이해하고 방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방문 틈에 하얀 잠옷자락이 보이는 것에 그녀가 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성관계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의 희열이었다. 준우는 다시 혜림의 둔부를 들어 올리며 보지 깊숙이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은지가 엿듣고 있다는 상황 때문인지 준우는 불같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그는 침대가 흔들리도록 격하게 혜림의 보지 속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가 빼내기를 반복했다. 결국 그는 깊은 늪 속으로 추락하는 오르가즘에 도달했다.

 

“하 윽.........”

“음..........”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 쉰 준우는 혜림의 보지 속으로 페니스를 깊이 박아 넣었다. 동시에 의식 없이 쓰러져 있던 혜림이 옅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옆으로 떨어뜨렸다. 그녀의 젖가슴을 붙들고 경직되는 준우는 충격적인 희열에 부르르 떨었다. 그의 페니스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진액이 혜림의 보지 속을 흥건하게 적셨다. 한동안 숨을 몰아쉬던 그는 슬그머니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바지를 추슬러 입은 준우는 발가벗겨진 혜림의 나신위에 모포를 덮어 주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책상위의 카메라 스위치를 끄고 등산 가방 안에 넣었다. 그가 방문 쪽을 바라보니 여전히 하얀 잠옷자락이 보였다. 그렇다고 그가 은지에게 할 말은 없었고 그녀를 배신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는 다시 은지를 마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등산 가방을 둘러멘 준우는 혜림의 방을 나가기 위해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문 밖에 시선을 옮기던 그는 당황하였다. 지붕으로 타고 올라갈 밧줄이 밑에 떨어져 있었다. 굴뚝에 옭아 멘 밧줄이 풀어진 것이다. 진퇴양난이 된 그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몸을 숨겼던 은지가 방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준우를 바라보는 은지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결코 원망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층계로 내려가라는 듯이 비켜서서 몸을 사리고 있었다. 준우는 어차피 혜림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조 창식에게 알릴 계획이었다. 다만 그녀를 강간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