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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말로... 1번 부부에게 복수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란 게...”

 

영수는 정말 영호의 계획이 궁금했다. 그러나 영호는 영수에게 계획을 말해주지 않았다.

 

“영수님을 못 믿어서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저만이 알고 있어야 성공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 그게 무슨...”

 

영수는 영호의 말이 미덥지 못했다. 그러나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믿으세요. 저를... 제가 반드시 추행범이 될 겁니다.”

 

영수는 단호히 말하는 영호에게 더 이상 그 계획에 대해서 물을 수가 없었다. 칼자루는 영호가 쥐고 있기에 억지로라도 믿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믿겠습니다.”

 

영수의 대답을 들은 영호가 미소를 보이며 영수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영호의 속마음은 달랐고, 그의 속마음은 영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

 

“그런데 수영이는 어쩌다가....”

 

“그러는 언니는요?”

 

서영과 수영은 계속해서 서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당장의 섹스 게임이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생각을 잊을 만큼 따뜻한 분위기에서 말이 오가고 있었다.

 

“남편이 사업을 했는데... IMF 때문에... 거기다가 오래 일한 동료가 횡령하고 도망가 버려서... 빚이 많아.”

 

“아... 그렇군요. 저희는 사실 어릴 적부터 둘 다 고아예요.”

 

“그렇구나. 힘들었을 것 같아...”

 

“솔직히... 조금 힘들긴 했어요. 힘들기도 했고... 외롭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까 서로를 많이 의지하게 되었고...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어요.”

 

수영이 더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서영은 그녀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20살의 수영이 눈물 나게 안쓰럽다고 생각한 서영이었다.

 

“부부가 되니까.... 아이를 갖게 됐어요.”

 

“그래?”

 

“네... 예쁜 딸이에요.”

 

“수영이 너 닮았으면 예쁠 것 같아.”

 

“고마워요. 언니... 이제 20개월이 조금 넘었어요. 이름은 지혜... 한지혜라고 해요. 그런데... 그 예쁘고 귀여운 애가... 아파요.”

 

“아파?”

 

수영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 백혈병이에요.”

 

백혈병이라는 수영의 말에 서영이 순간 저도 모르게 의심을 했다.

 

‘2라운드에서 그 영수 부부도 그런 거짓말을 했는데...’

 

그러나 서영의 수영에 대한 의심은 아주 잠깐 뿐이었다. 오히려 수영을 의심하는 자신을 탓했다. 수영의 표정을 보면 도저히 의심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딸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이 얼굴에 한 가득 나타나 있었다.

 

“귀엽고 그 조그만 아기가 무슨 죄가 있는지... 부모로서 너무 미안했어요. 그리고 꼭 살리고 싶어요. 명진 씨와 전 그 생각 밖에 없어요. 우리 딸을 꼭 건강한 모습으로 만들어야겠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쁘거든요. 그래서... 돈이 필요해서... 저희가 돈이 없으니까...”

 

수영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져 있었기에 서영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말을 했다.

 

“수영이는 좋은 엄마야. 자책할 필요가 없어. 그리고 기운을 내.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잖아. 수영이가 강해져야 우리 예쁜 지혜도 건강해질 거야.”

 

“그럴 수 있겠죠? 꼭 그렇게 되겠죠?”

 

수영이 서영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응.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서영이 자신 있게 대답을 해줬고, 수영이 다시 얼굴에 미소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웃어야 힘을 내지. 힘들어도 웃어야... 기운이 날 거야. 지혜도 엄마가 웃는 걸 더 좋아할 거야. 울면 예쁜 얼굴이 못나지니까...”

 

“언니 같은... 엄마가 있었으면.... 좋았을 거예요.”

 

“언니 같은 엄마는 뭐야? 호호.”

 

“제 말이 이상했나 봐요.”

 

서영과 수영은 한동안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서영은 수영과 함께 4라운드에 반드시 진출하고 싶었다. 4라운드 후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사회에 나가서라도 연락처를 받아 그녀 부부를 돕고 싶었다. 물론, 당장 서영 역시 수중에 돈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돼?”

 

“아직 몰라요. 그런데 4라운드는 일단 진출하고 싶어요. 우승까지는 생각하지도 않아요. 끝까지 갈 자신도 없고... 적당히 칩이 모이면 포기할건데... 남편과 상의해야겠죠.”

 

“그래. 꼭 우리가 4라운드에 함께 진출하자.”

 

“그럴 수 있으면... 저도 행복할 것 같아요.”

 

힘든 상황 속이었지만, 서영은 수영과의 대화가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간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그런데 왼손 약지에 반지... 결혼반지야?”

 

서영의 눈에는 수영의 왼손 약지에 빛이 바란 은반지가 보였다. 그냥 반지만 놓고 보면 볼품이 없었지만, 수영은 그 반지를 매우 소중이 여기는 듯 했다. 틈만 나면 습관처럼 오른손으로 그 은반지를 쓰다듬었기 때문이었다.

 

“아... 이 반지요? 네. 결혼반지에요. 딱히 결혼식도 없었지만... 이 반지는 남편이 저에게 청혼할 때 준거에요. 남들 눈에는 빛이 바라고 값싼 은반지일 뿐이지만... 저에게는 매우 소중해요.”

 

“응... 예뻐. 잘 어울리고...”

 

“고마워요. 앞으로 평생 이 반지만 낄 거예요.”

 

“호호호. 그래... 힘들 때, 함께 하는 게 진짜 부부지.”

 

서영과 수영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대화 주제는 다시 게임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현실은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게임이 사실상 마지막 승부니...”

 

“저도 생각해 봤는데... 진짜 방법이 없네요. 이제 하늘에 맡겨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이제는...”

 

밥까지 거르며 서영 역시 우측 1번방에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두 번째 게임은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추행범으로 선택되는 것은 수영의 말대로 오로지 하늘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5번 부부처럼 기도라도 할까?”

 

“기도한다고 해서 되면... 100번도 더 하지요.”

 

“그래... 기도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할 수도 없었기에 서영과 수영은 잠시 침묵을 했다. 운명을 결정짓는 게임이 곧 시작될 것이었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게임 시간을 기다려야 할 뿐...

 

“아참.”

 

“네?”

 

“사실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오해하지는 마.”

 

“네. 말씀 하세요.”

 

“처음에 우리에게 힘을 합치자고 제안할 때 말이야.”

 

“네.”

 

“왜 우리가 두 번째였지?”

 

서영은 수영이 자신에게 먼저 찾아오지 않은 점이 궁금했다. 처음 찾아간 부부는 5번 부부였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만 놓고 보면 자신이 5번 부부에 비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음... 그건...”

 

“괜찮아. 솔직히 말해줄래?”

 

“미안해요.”

 

서영의 의도를 안 수영이 사과를 했다. 그러나 서영은 미소를 띠며 수영에게 말을 했다.

 

“미안한 일이 아니야. 그냥 그 판단 근거가 궁금해서...”

 

“네. 지금은 언니를 믿으니까 말씀드릴게요.”

 

“응.”

 

수영이 차분히 서영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대답을 했다.

 

“제가 처음에 믿을 만 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했잖아요. 솔직히 그 누구든 믿을 수가 없었어요. 어쩌면 당연했죠. 그러나 서로 힘을 합칠 사람이 필요했고... 남편이 사람을 구분해야 했어요. 남편은 오직 눈으로만 사람을 구분해 내는 능력이 있어요.”

 

“응. 그랬지. 영수라는 사람이 사백안이라고 했잖아? 사실 수영이 남편 말대로 2라운드 게임에서 그 사람이 배신을 하기도 했으니... 그러면 우리에 대한 평도 자세히 있었겠네.”

 

“네. 언니야 말로 오해하지 마세요. 진짜 언니를 믿으니까...”

 

“걱정 말고 말해.”

 

수영이 조금 뜸을 들이더니, 말을 했다.

 

“언니 남편이... 사백안이래요.”

 

수영의 말을 들으며 서영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깜짝 놀랐다. 자신의 남편인 민혁이 영수와 같은 사백안이라니... 같이 살아왔지만, 민혁이 단 한 번도 비윤리적인 행위를 한 것을 본 적이 없는 서영이었다.

 

“음... 그래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제안한거야? 2번 부부에게는 하지 않았잖아.”

 

“2번 부부는 여자 쪽도 별로래요. 그런데 가장 무난한 5번 부부가 기권만 한다고 해서... 두 번째로 나은 언니 부부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남편이 조금 고민을 하기는 했어요. 언니 남편 분이 사백안이어서...”

 

“고민을 했는데... 찾아왔네?”

 

“네. 남편이 언니는 믿을 만 하다고 했거든요.”

 

“그래?”

 

“네. 남편이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언니가 제일 믿을 만 하댔어요. 그래서 남편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렇겠구나.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믿지 못하는 사람이 부부였으니...”

 

서영은 수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녀가 왜 두 번째로 자신을 찾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미안해요. 언니 남편을 못 믿는 건 아니에요. 제 남편 말이 다 옳은 것도 아니고... 지금은 언니를 믿어요.”

 

“괜찮아. 미안해 할 필요도 없어. 사실이 아니니까... 난 다시 말하지만 수영 부부와 4라운드에 진출할 거야 꼭!”

 

“네. 언니!”

 

우측 1번방에서 서영과 수영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점점 두 번째 게임 시간이 다가왔다.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고 노크 소리와 함께 1번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민혁이 들어오면 말을 했다.

 

“손님이 있었네. 이제 20분 정도 남았어.”

 

 

 

@ 36부에서 이어집니다.

 

영수가 돌아간 후, 영호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의 계획이 무리가 없는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60%의 확률이면 상당히 높다. 거기에 20% 확률인 영수의 지분까지 더하면 우리 팀이 두 번째 게임에서 추행범으로 결정되는 건 거의 기정사실인데... 문제는 내가 추행범이 되어야 할 텐데... 40%의 확률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그래도 나를 믿어야겠지. 이런 계획을 세웠는데, 내가 추행범이 되지 못하면 게임을 이끌어가지 못하게 돼... 영수를 믿을 수가 없으니... 반드시... 이 계획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참을 생각하던 영호는 효진에게 기다릴 것을 지시하며 방을 나갔다. 그리고 약 10분 후에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어디 다녀왔어?”

 

효진이 물었고, 영호가 웃으며 대답을 했다.

 

“마법 좀 부리고 왔지.”

 

“마법?”

 

“응.”

 

효진은 영호가 말한 마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의아한 눈빛으로 영호를 보며 다시 묻기 시작했다.

 

“그게 뭔데?”

 

“우리가 필승하는 법... 그리고... 내가 게임을 이끌어가는 법...”

 

“그렇게 말하지 말고... 자세히 말해 봐.”

 

효진이 재촉했다. 그러자 영호가 효진에게 자신이 생각한 계획을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해했어?”

 

한참을 설명한 영호가 효진에게 물었다.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휴... 바보... 다시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집중해야 돼. 당신과 내가 이 방법을 정확히 숙지해야만, 게임을 이길 수 있으니까.”

 

“아... 알았어.”

 

효진이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 영호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영호는 효진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녀 앞에서 시범을 집적 보이기까지 했다. 효진은 영호의 행동을 보며 천천히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해됐지?”

 

“대충... 알 것 같아.”

 

“아이고... 곰팅아. 대충은 안 돼. 정확히 알아야 해.”

 

“아... 아... 아니.. 알아. 이번에는 내가 지가한테 설명해 볼게.”

 

“좋아.”

 

이번에는 반대로 효진이 영호에게 자신이 이해한 계획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효진이 설명하는 중간에 실수를 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영호의 계획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효진의 설명을 다 들은 영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맞아. 이해는 했네. 하지만, 계속 생각해야 해. 절대 실수하면 안 돼. 알았지?”

 

“응. 그런데 왜 그 계획을 나도 정확히 알아야 해. 자기만 알면 되지 않아?”

 

“바보야. 추행범이 꼭 남자가 된다는 법이 없잖아.”

 

“아. 맞다. 나 정말 바본가 봐.”

 

“여자들이 추행범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때는 나대신 자기가 그 일을 해줘야 해.”

 

“응.”

 

효진은 자신의 남편이 매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남편은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 정말 대단해... 어떻게 그런 방법을 떠올렸어.”

 

“규칙.”

 

“규칙?”

 

“응. 컴퍼니가 정한 규칙을 차분히 생각해 봤지. 그런데 갑자기 그 계획이 실현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야. 그리고 게임의 역발상... 역으로 생각하니까 답이 나오더라고...”

 

“참 대단해. 다른 사람도 그렇고 나도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답이 없는 문제였는데... 5개의 쪽지가 있는 상자에서 1개의 쪽지를 뽑아야 하는데... 우리가 추행범이 될 확률이 60%라니... 더구나 영수 부부가 추행범이 될 확률까지 더하면... 사실상 우리가 이긴 게임이야.”

 

“응. 우리가 게임을 지배할 수 있어. 대신에 반드시 우리가 추행범이 되어야 해. 40%는 우리가 추행범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우리가 추행범이 되어야 영수 부부를 제어할 수 있어. 알았지?”

 

“응. 꼭 그렇게 될 거야.”

 

“그러기 위해서 다시 연습해 볼까?”

 

“좋아!”

 

영호와 효진은 그렇게 3라운드 두 번째 게임이 시작 될 때까지, 영호의 계획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연습했다.

 

***

 

“지금... 자기는 그 말을 믿는 거야?”

 

“믿을 수 있어.”

 

“아... 참... 그렇게 당하고도 또 그러는 거야?”

 

수영이 돌아가고, 서영은 민혁에게 수영과 나누었던 대화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서영의 기대와는 달리 민혁은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민혁은 자신의 아내인 서영이 수영에게 단단히 홀렸다고 생각했다.

 

“그 애는 영수와 은희 같은 저질스런 사람들과 달라.”

 

“그걸 어떻게 알아?”

 

“당신도 대화를 해 보면 알 거야. 그 애는 순수해.”

 

“아이고... 순수한 그 애가 3라운드까지 왔단 말이야? 그 어린 나이에 섹스 게임이라는 곳에 참여를 했는데... 그것도 3라운드까지 왔어. 2라운드 게임이 무엇이었는지 당신도 알잖아. 그런 애가 순수하다고?”

 

민혁은 도저히 서영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순수’라는 말을 들먹이는 서영의 정신 상태까지 의심이 되었다. 민혁은 서영이 첫 번째 게임에서 추행범에게 1시간동안 유린을 당해서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져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여기에 온 이유... 사정이 있었잖아. 수영 부부도 마찬가지야.”

 

“아기가 있고... 그 아기가 백혈병이다?”

 

“그래...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참가를 했다고 했어.”

 

“영수와 은희도 그런 말을 했지. 더구나 똑같이 백혈병이네?”

 

“무슨 말을 하는 줄은 알겠어. 그런데 수영이는 달라! 정말 다르다니까.”

 

“아휴... 답답아. 그걸 어떻게 알아? 난 명진이라고 했던가? 그 남편이라는 어린 남자도 못 믿어.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데... 2라운드를 통과해서 여기까지 왔어. 이게 말이 돼? 그리고 뭐 사백안? 자기가 무슨 관상쟁이야. 겨우 20살 밖에 안 된 놈이... 누구를 평가하고 저울질이야... 이게 말이 돼?”

 

“첫 번째 게임에서 내가 피해자였을 때... 유일하게 날 걱정해 준 사람도 수영이었어... 난 관찰을 했단 말이야. 다들 나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였지만... 수영만큼은 나를 보고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지어줬어... 날 걱정해줬단 말이야.”

 

“난 못 봤어. 그리고 당신은 지금 너무 지쳐있어. 그래서 제대로 생각을 못하는 거야.”

 

“아... 아니야!”

 

민혁과 서영의 생각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평소에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의견 대립은 서로를 점점 지치게 하고 있었다.

 

“난 왜 이런 문제로 당신과 다투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수영이라는 어린 여자애... 당신이 그 여자애를 안 시간은 고작 몇 시간에 불과 해. 그런데 그 여자애를 믿는다고? 이게 상식이야?”

 

“난 믿어.”

 

“그래 믿는다고 하자. 그리고 첫 번째 게임에서 추행범이 영수라고 왜 나에게 말 안 했어? 그 이유가 뭔데? 첫 번째 게임에서 영수를 추행범으로 잡았으면... 4라운드 바로 진출이잖아.”

 

“휴... 아까 설명했잖아. 수영 부부를 살리지 못하면... 우리가 죽어야 했다고... 당신도 알 것 아니야. 영수 부부와 6번 부부가 이미 연합했다는 사실을....”

 

“그건 아는데...”

 

민혁은 서영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확실히 첫 번째 게임에서 영수가 추행범, 자신의 아내인 서영이 피해자가 되면서 큰 위기를 맞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위기를 벗어나게 한 건 오로지 서영만의 힘이고 노력이었음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에게는 알렸어야지.”

 

“모든 사람을.... 속여야 했단 말이야... 당신이 알고 있으면... 혹시라도 실수를 했다면... 수영 부부는 탈락이었어... 그리고 두 번째 게임에서는 우리가 당했을 것이고...”

 

“그래도 당신은 나에게 알려야 했어.”

 

민혁은 고통을 나누지 않는 서영이 야속했다.

 

“우리는 이제 수영이를.... 믿어야 해.”

 

“아휴... 난 못 믿어.”

 

“그래... 당신 말대로 믿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분명한 건 수영 부부와 함께 4라운드에 가야하는 거야... 이미 어떤 상황인지 당신도 알 것 아니야. 영수 부부와 6번 부부를 이겨내려면...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어. 믿지 않아도 좋으니까... 믿는 척이라도 해줘.”

 

서영이 처절하게 민혁에게 말을 했다. 그리고 민혁은 서영의 말에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실상 수영 부부를 믿지는 못했지만, 그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영수 부부와 6번 부부 연합 팀을 이겨낼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믿는 척... 좋아. 어차피 그들이 영수 부부의 첩자였다면... 우리는 이미 죽은 목숨일 테니...”

 

“당신 끝까지 그럴래! 왜 그래!”

 

“아니...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거잖아. 더 이상 그만 하자. 시간도 다 됐고... 믿는 척은 해줄 테니...”

 

“그래... 믿는 척이라도 해서... 우리가 추행범이 될 수 있다면... 반드시 영수 부부나 6번 부부를 찾아가야 해... 알았지?”

 

“..........”

 

대답 대신 민혁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서영과의 대화로 답답한 마음을 가실 길이 없던 그가 몸을 돌려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방문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고, 서영을 다시 바라본 후, 로비의 중앙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향해 걸어갔다.

 

“잘... 되어야 할 텐데... 휴우.”

 

서영 역시 먼저 나가는 민혁을 바라보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서영 역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벽에 있는 시계가 저녁 7시를 알렸기 때문이었다.

 

***

 

- 하하하. 잘들 쉬시고... 저녁 식사도 맛있게 하셨는지요.

 

모든 참여자가 로비 중앙의 대형 스크린이 있는 곳에 모였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대형 스크린에는 여지없이 치킨 박이 등장하였다.

 

- 이제 두 번째 게임을 시작하겠는데요. 하하하하. 참 흥미로운 게임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시작을 해야겠지요?

 

말을 마친 치킨 박이 자신의 앞에 있는 검은 상자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공 하나를 꺼내들었다.

 

- 하하하. 이번에도 파란공이군요. 자동적으로 추행범은 남자가 되겠습니다. 이번에도 여자분들이 고생을 좀 하시겠군요.

 

추행범이 또 다시 남자로 결정이 되었다. 효진이 그 순간 자신의 남편인 영호를 쳐다보았다. 영호는 흐릿하지만 미소를 띠고 있었고, 오로지 효지만이 그것을 볼 수 있었다.

 

- 자, 그러면 다섯 명의 남자 분들...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누가 추행범이 될지, 결정을 해야겠지요.

 

치킨 박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컴퍼니 직원 하나가 검은 상자를 들고 모든 참여자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각 팀의 다섯 명의 남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순간 영호가 손을 들며 치킨 박에게 질문을 했다.

 

“치킨 박님.”

 

- 네. 차영호님... 무슨 문제라도? 하하하.

 

“이번에도 번호 순서대로 뽑기를 하는 겁니까?”

 

- 네. 하하하.

 

“그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6번이라 계속 남아 있는 쪽지를 가져갈 수 밖 에 없는데요. 그건 뽑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남들이 남겨 둔 것을 그냥 가져갈 수 밖 에 없지요. 한마디로 다른 쪽지를 뽑을 선택권이 저에게 없다고 봅니다.”

 

영호의 거침없는 말에 치킨 박은 물론 모든 참여자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다수는 영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해 했다.

 

- 일리가 있군요. 하하하.

 

“이번에는 저부터 역순으로 뽑았으면 합니다.”

 

- 하하하. 흥미 있는 제안이군요. 다른 분들 의견을 들어볼까요?

 

치킨 박이 나머지 참여자들에게 의사를 물었다. 사실 먼저 뽑기를 한다고 유리할 건 하나도 없었다. 5개의 쪽지 중에서 추행범이라고 적혀 있는 쪽지는 단 1개였기 때문이었다. 순서에 따른 유불리는 당연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전 반대합니다.”

 

서영은 순서가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호가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찝찝했다. 그래서 손을 들어 반대를 했다.

 

“저도 반대합니다.”

 

이번에는 수영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서영이 반대를 했기에 수영도 그에 동참을 했다. 서영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하하하. 재밌는 상황이군요. 나머지 반대하는 팀 없습니까? 2번 부부 팀의 생각은?

 

“저희는 역순으로 가도 상관없습니다.”

 

영수가 대답을 했다. 영호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었다.

 

- 그러면 5번 부부 팀은 어떤 의견입니까? 하하하

 

“하느님의 뜻에 따를 뿐... 순서는 상관이 없습니다.”

 

역시 남편이 민석이 대답을 했다. 치킨 박은 모든 팀의 의견을 종합했고, 다시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재밌군요. 하하하. 반대하는 팀이 2팀, 그리고 반대를 하지 않는 팀이 2팀. 동률입니다. 하하하. 그래서 저 치킨 박은 이런 제안을 드리죠. 가위바위보를 합시다. 하하하. 자, 영호님과 가위바위보를 할 대표 한 분 나오세요.

 

가위바위보라는 단순한 게임을 제안한 치킨 박이었다. 민혁과 서영, 그리고 명진과 수영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결국에는 먼저 반대 의견을 낸 서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두 분이서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그리고 이긴 자의 의견에 따르도록 하지요. 하하하. 단판입니다.

 

영호와 서영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둘의 심정은 사뭇 달랐다. 서영은 져도 그만이었지만, 영호는 반드시 이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쉽게 되지 않네... 역시 저 서영이라는 여자는... 뭔가가 있어.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는데... 아무튼 이기긴 해야겠는데... 내 계획이 이런 가위바위보에 묻혀서는 안 되지...’

 

영호는 반드시 추행범을 선정하는 뽑기를 먼저 해야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킬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가위바위보를 이겨서 자신이 첫 번째 순서가 되어야 했다.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영호의 표정만큼은 여유가 있었다. 이런 긴장감을 즐기는 자가 바로 영호였으니...

 

‘난 승부사야... 할 수 있어..’

 

스스로를 믿는 영호였다.

 

- 시작합니다. 가위바위보!

 

치킨 박의 말과 함께 영호와 서영은 상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의 손을 확인한 치킨 박이 입을 열었다.

 

- 하하하. 좋습니다. 결과를 모두 인정하시지요?

 

영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주먹을 낸 영호가 가위를 낸 서영을 이긴 것이었다. 서영은 씁쓸했지만 표정 변화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영호는 컴퍼니 직원이 들고 있는 검은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 하하하. 약속대로 6번 차영호님부터 추행범 뽑기를 시작하도록 합니다.

 

영호가 검은 상자에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은 3장의 쪽지를 집어 들었다.

 

 

 

@ 37부에서 이어집니다.

 

검은 상자 안에서 3장의 쪽지를 집어낸 영호는 자연스럽게 손을 빼냈다. 그리고 주먹을 쥔 상태로 3개의 쪽지를 숨겼다. 쪽지를 바지 주머니에 넣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첫 번째 게임에도 주먹을 쥔 상태에서 쪽지를 숨겼으니, 일관된 행동을 보여주어야 했다. 다행히 그 누구도 영호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서영은 유심히 영호를 지켜봤지만 이상한 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쪽지를 뽑는 과정도 별달리 특별한 점이 없었고, 영호의 표정 역시 언제나 한결 같았다. 그러나 서영은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일이라도 그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는 법이었으니...

 

‘알 수가 없어...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걱정을 하는 것일까? 그냥 뽑기를 하는 것일 뿐인데... 더구나 이번 두 번째 게임은 단순히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게임이니... 내가 너무 예민했나?’

 

서영이 영호를 지켜보는 가운데, 5번 부부의 남편이 민석이 검은 상자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 장의 쪽지를 뽑았고, 다음은 명진, 그리고 영수와 민혁이 차례대로 추행범을 결정하는 뽑기를 할 수 있었다.

 

- 하하하. 다들 한 장씩 쪽지를 뽑으셨지요?

 

다섯 부부의 운명을 결정하는 추행범을 결정하는 뽑기가 끝났다.

 

- 첫 번째 게임과 같습니다. 각자의 방에 들어가셔서 남자 분들은 쪽지를 확인하세요. 하하하. 여자 분들은 이번에도 고생을 좀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시작해 보도록 하죠.

 

치킨 박의 말이 끝나고 모든 참여자가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모든 참여자가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게임이 실시가 되었는데, 특히 추행범이 될 수 있는 남자들의 마음은 급했다. 그래서 피해자가 되는 여자들보다 남자들의 발걸음이 빨랐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쪽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됐을까? 60%의 확률이었는데...”

 

통로 좌측의 6번방에 들어온 영호는 그 어떤 남자들보다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긴장이라는 것도 영호에게 있어서는 그 성질이 달랐다. 초조함과 불안함이 아닌 흥분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승부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영호였다.

 

“휴우... 시작해 볼까?”

 

침대에 걸터앉은 영호가 오른 주먹을 펼쳤다. 영호의 손바닥에는 세 개의 쪽지가 있었다. 남들 눈에 걸리지 않았으니, 영호의 계획은 성공이었다. 그러나 정말 성공하려면 자신이 추행범이 되어야 했기에, 영호는 조심스럽게 첫 번째 쪽지를 펼쳐보았다.

 

“꽝이군... 하하.”

 

첫 번째 쪽지에는 아무 글씨가 적혀 있지 않았다. 영호는 이어 두 번째 쪽지를 펼쳐보았다. 추행범이라는 글쓰기 적혀 있기를 바라며, 쪽지를 펼쳤지만, 두 번째 쪽지도 아무 글씨가 적혀 있지 않았다.

 

“꼭 이런다니까... 하나 남았는데...”

 

영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자꾸 헛웃음만 나왔다. 종이 한 장에 느껴지는 흥분감에 영호는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랬지... 다 내 세상 같았어... 마지막 한 판을 지기 전까지는... 그때도 종이 한 장이었는데... 후훗... 이번에야 말로 패할 수 없겠지.”

 

마지막 쪽지를 영호가 펼쳐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가는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추행범.

 

마지막 쪽지에서 영호는 그토록 기다리던 세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게임은 영호의 계획대로 그가 추행범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리고 영호가 추행범이 적힌 쪽지를 들고 있는 가운데, 방안의 스크린에는 치킨 박이 등장하였다.

 

- 하하하. 축하드립니다. 차영호님. 역시 전직 겜블러 다운 솜씨군요.

 

“풋... 겜블러라니요. 과찬입니다. 그냥 길거리 야바위꾼이었지요.”

 

- 하하하. 지켜보는 저 치킨 박은 여러분들의 행동과 대화가 너무나 흥미롭답니다. 사실 두 번째 게임을 많이 기대했어요. 누가 과연 하늘의 뜻을 받을 수 있을까? 하하하. 그런데 저를 비롯한 컴퍼니는 여러분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 차영호님을요. 하늘의 뜻을 직접 만들어 내시니... 새삼 놀라웠습니다. 하하하.

 

“규칙 위반은 아니지요?”

 

영호가 치킨 박에게 자신의 계획이 규칙위반이냐고 물었다.

 

- 하하하. 그에 대해서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규칙위반이었다면 이미 저희가 통제를 했을 겁니다. 규정에는 쪽지를 바꿔치기 하면 안 된다라는 내용이 없으니... 하하하. 저희 컴퍼니가 준비한 게임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도 게임 참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저희야 말로 이번에 배웠습니다. 하하하. 쪽지를 바꿔 칠 생각을 하다니... 상상도 못했지요. 또한 놀랐습니다. 다른 참여자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아주 자연스런 행동이었어요. 만약에 다른 참여자가 쪽지를 한 장씩 뽑는 것을 확인하자라는 말만 했다면... 계획은 무산되었을 텐데... 그런 생각 자체를 못하게 할 정도로 좋은 연기였습니다. 하하하.

 

치킨 박은 영호가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 짧은 시간에 또 그 역경 속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모든 참여자들을 속여 버린 것이었다. 마치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웠던 것처럼,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영호는 실행하고 있었다.

 

“그럼 제가 추행범이니...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하하하. 좋습니다.

 

영호가 추행범으로 결정이 되면서 본격적인 두 번째 게임이 시작이 되었다. 영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일단 계획대로 해볼까? 마침 기분도 풀 겸...’

 

영호가 방문을 열고 통로로 나갔다. 그리고 피해자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두 번째 게임 직전, 영수가 떠나고 영호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5번 부부인 민석과 지민을 찾아갔다.

 

“아이고... 형제자매님. 안녕하십니까?”

 

영호는 민석과 지민을 향해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민석과 지민은 얼떨떨하긴 했지만, 영호가 말하는 ‘형제자매’라는 소리에 썩 기분이 좋았다.

 

“아... 영호님도 은혜를 아시는 분인가요?”

 

민석이 영호에게 물었다. 그리고 영호는 손사래를 치며 민석에게 대답했다.

 

“은혜는... 아직 어리석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 분의 은혜를 느끼고 또 고마워하고 싶지만... 언제나 저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지요.”

 

“사탄의 유혹... 그것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겨낼 수 있답니다.”

 

“사람을 의심합니다. 또 괴로워합니다. 그 분께 기도를 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하지만, 저는 똑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민석님과 지민님을 의심했습니다. 큰 죄지요. 의심을 했기에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래도 용서를 하세요. 잘 오셨어요.”

 

영호의 뜻하지 않는 고백에 지민이 웃는 얼굴로 대답을 해줬다.

 

“민석님과 지민님을 지켜봤습니다. 언제나 그 분께 기도하는 모습...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저 역시 그 분께 항상 다가가고 싶지만... 왜 두 분을 의심해야 했는지, 지금도 후회가 된답니다.”

 

“사람은 항상 죄를 짓지요.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는 항상 지켜보시면서 또 용서를 하신답니다.”

 

“네. 맞아요. 영호 형제님은 이미 용서를 받으셨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두 분 말씀 들으니까, 제 마음이 조금 나아지네요.”

 

영호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민석과 지민 앞에서는 마치 기독교인처럼 행동을 했다. 무릇 종교라는 것이 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누워서 떡 먹는 것보다 쉬웠다. 따로 공부할 필요도 없고 준비할 것도 없었다. 그저 하느님을 찬양하고, 믿으며, 또 은혜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알리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기도도 빠질 수가 없었지만...

 

“두 분이 추행범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니었거든요. 물론... 이런 생각이 죄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머리는 계속 두 분을 의심하며 저를 죄의 구렁텅이로 끌고 갔습니다.”

 

어느 정도 대화를 이어가면서 영호가 추행범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지 않은, 즉, 아무것도 쓰이지 않는 빈 쪽지를 민석과 지민에게 보여줬다. 영호의 말과 행동은 아주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이런 영호의 행동을 보면서 민석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역시 아무것도 쓰이지 않는 쪽지를 꺼내 펼쳐보였다.

 

“저희도 아니었답니다. 괜히 걱정을 하셨군요.”

 

“아... 역시... 제가 의심을 하며 죄를 범했던 것 같습니다.”

 

영호는 민석이 펼쳐 보인 쪽지를 확인했다. 확실히 아무것도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쪽지와 같음을 또 확인했다.

 

“이런 종이가 뭐라고... 서로를 의심하고 미워했는지...”

 

영호가 계속해서 자책을 하며 자신이 가지고 온 쪽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 영호의 행동을 바라보며 민석 역시 쪽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리 영호 형제께서 많이 괴로워하셨나 봅니다.”

 

“휴우... 사실 괴롭습니다. 두 분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괴롭습니다. 제가 두 분을 찾아온 이유는...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부탁 말씀 입니까?”

 

“네. 괴로워하는 저를 위해 기도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믿음이 강하신 두 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조금이나마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영호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민석과 지민은 그런 영호의 모습에 측은한 마음을 느끼며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역시 두 손을 모았다.

 

“우리 영호 형제님을 위하여... 부족한 제가 우리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를 하겠습니다.”

 

영호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민석의 주도 하에 세 사람은 바닥에 꿇은 채로, 약 5분이 넘는 시간동안 기도를 하였다.

 

기도가 끝난 후에는 영호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민석과 지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민석과 지민 역시 웃으며 자신들의 방을 나가는 영호를 보며 뿌듯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물론, 민석과 지민은 영호가 떠난 후 바닥에 내려놓은 쪽지가 사라졌음을 전혀 인식할 수 없었다.

 

***

 

5번 부부로부터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쪽지를 훔친 영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쪽지를 함께 이용하여 두 번째 게임에서 추행범이 될 수 있었다. 기존의 가지고 있던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쪽지 2개를 뽑기를 하면서 검은 상자 안에 넣어버렸고, 그와 동시에 검은 상자 안에 있던 쪽지 3개를 가져온 것이었다.

 

각 부부마다 20%의 확률로 추행범이 될 수 있었지만, 영호는 이 방법으로 자신의 추행범이 될 확률을 6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호는 자신이 반드시 먼저 뽑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었다. 만약에 또 다시 마지막에 뽑기를 했다면, 검은 상자에는 바꿔치기를 할 쪽지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계획은 대 성공을 했는데... 갑자기 갈등이 되네.’

 

현재 추행범으로 결정된 영호는 2번방과 3번방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3번방에 들어가야 했다. 먼저 3번 부부를 피해자로 만들고 투표를 통해서 1번 부부를 탈락시키면 되었는데,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든 것이었다.

 

‘내가 2번방에 들어가서 영수 아내 은희를 피해자로 만들고... 5번 부부는 기권을 했으니, 1번부부와 3번 부부를 꼬셔서 기권시키고, 나도 기권하면, 2번 부부만 탈락이고 전원 10개의 칩을 상금으로 받으며 4라운드 진출인데...’

 

영호에게 있어 매우 군침이 도는 시나리오였다. 문제는 현시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였다.

 

‘1번 부부와 3번 부부가 나를 좋게 보지는 않겠지만.... 2번 부부는 반드시 탈락시키려고 하니... 합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5번 부부가 되겠군.’

 

추행범 뽑기 결정을 할 때, 영호의 의견을 반대한 사람은 서영과 수영이었다. 그것 하나만 보더라도 영호의 적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영호 생각에는 오히려 이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1번 부부가 증오하는 사람은 2번 부부였으니, 오히려 말만 잘하면 기권 규정을 이용하여 2번 부부를 탈락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5번 부부가 감이 안 온단 말이야. 다 기권했는데... 그들 부부만 투표를 해버리면... 그들만 빼고 전원 탈락이니... 오히려 중립을 지키는 척 감정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더 무서운 법이니...’

 

사실 예전 같으면 영호는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적군의 적은 아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번 부부와 3번 부부를 이용하여 2번 부부를 탈락시키고 4라운드에 진출할 계획을 그대로 실행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뒤가 없다. 한 번 실패하면 그대로 나락이었다. 더 이상 기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참... 승부사 기질도 다 버려야 하고... 재밌군... 재밌어... 두 번째 게임은 안전하게 가야하나... 쓰리고 하려다가 고박 쓰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쩝.’

 

결심을 한 영호가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

 

“제발... 제발...”

 

수영은 두 팔이 침대에 묶인 채, 나체의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중얼거리며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어떤 신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제발 이번 게임만큼은 반드시 서영과 자신이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제발... 이번만 이기면... 이번만...”

 

얼마나 간절했는지, 수영의 작은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번 한 번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서영 언니와... 함께 4라운드에 가야 해... 이번만...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수영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누구에게 들으라고 수영이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간절하고 애절했기 때문에 수영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을 뿐이었다.

 

찰칵.

 

그러나 수영의 간절한 바람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방문이 열리며 찬바람과 더불어 누군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수영은 다 끝났다는 생각에 절망에 빠져들었다.

 

 

 

@ 38부에서 이어집니다.

 

“누... 누구세요?”

 

수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바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 하하하. 이번 피해자는 이수영님이군요. 이제 게임 시작합니다.

 

수영의 귀에 치킨 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볼 수는 없었지만, 스크린에는 타이머가 작동이 되고 있었다. 앞으로 1시간, 수영은 추행범에게 어떤 반항도 할 수가 없었다.

 

“누... 누구세요?”

 

수영이 다시 추행범이 누구인지 물었다. 수영은 자신의 방으로 온 추행범이 영수 또는 영호 임을 짐작은 했다. 그들이 아니면 자신의 방이나, 서영의 방으로 추행범이 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 누군지 말해... 주세요.”

 

통로 우측의 3번 방문이 열리면서 사실상 게임이 끝났음을 수영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추행범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눈이 가려진 상태로 침대에 묶여 있는 수영은 약간의 공포감을 느끼며 몸을 떨고 있었다.

 

“내가 무섭나?”

 

추행범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수영은 추행범이 영호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6번 부부... 영호님이군요.”

 

“오호... 정답.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는데...”

 

“제 방문이 열리면서... 추행범은 두 사람 중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뭐... 그렇군.”

 

수영은 영호에게 나체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20살의 나이에 다른 남자에게 몸을 보여주는 것은 수치심이 상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영은 지금 수치심보다 절망감이 온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 졌군요... 저희가...”

 

“후훗... 뭐... 그렇지. 머리를 굴려도 더 이상 우리를 이길 방법이 없으니...”

 

서로의 엇갈린 운명과는 다르게 비교적 차분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옆에 앉겠어.”

 

영호가 수영 옆으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영호가 다가오자 수영이 몸을 움츠리긴 했지만, 두 손이 묶여있기에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더구나 영호 얼굴이 보이지 않아 더욱 더 위축이 되는 수영이었다.

 

“내가 왜 이 방으로 왔다고 생각해?”

 

돌연 영호가 수영에게 질문을 했다. 수영은 영호의 질문 의도가 궁금했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 그래야 제가 투표권이 없으니까요.”

 

“그것도 이유지만... 그러면 1번방으로 가도 나쁘지는 않았거든... 순서만 달라질 뿐... 너나 1번 부부나 탈락하는 것은 매한가지니...”

 

“..............”

 

“내가 3번방을 온 이유는... 수영이라고 했지? 다 너 때문이야.”

 

“무... 무슨 말이죠?”

 

“우리가 참여한 게임... 잊었어? 섹스 게임이야. 그리고 난 지금 추행범이고...”

 

영호의 말을 듣는 그 순간, 수영은 온 몸에 소름이 돋음을 알 수 있었다.

 

“설마...”

 

“그래. 하고 싶었어. 내색은 안 했지만... 난 수영이 같은 어린 애를 참 좋아하거든...”

 

영호가 수영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남자의 손을 느낀 수영이 몸을 비틀어서 피하려고 하지만, 영호의 손은 끈질기게 수영의 허벅지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수영의 은밀한 곳으로 영호의 손이 올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