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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럽시다.”

 

영호가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 뒤를 아내인 효진이 따랐다.

 

“우... 우리 완전히 속은 거지?”

 

“그럴 수 있다고 봐야겠지.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주 미친 듯이 기도만 하기에 방심을 했던 것 같아. 더구나 그 어린 수영이라는 여자애가 나에게 말해줬지. 저 5번 부부는 계속 기권만 한다고 했다고... 그것도 아주 절묘해. 모든 사람에게 알린 것도 아니고, 한 팀의 부부에게만 넌지시 그 사실을 알렸으니... 의심을 가는 행동을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의심을 넘어서 경계심까지는 갖지 않게 했어... 어차피 기권 규정의 경우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 4라운드 진출에 목적을 둔다면... 아주 재밌는 계획이었어. 또한 단순했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성공을 해냈다는 것이고... 지금이라도 정체를 알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영호의 말을 들은 효진 역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효진 역시 5번 부부는 거의 신경을 쓰지도 않고 있었다. 그저 기도에 미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그 모든 것이 4라운드 진출을 위한 연기였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다음에 또 만날 수도 있겠네?”

 

“만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그들이 탈락할까 봐?”

 

“우리가 탈락할 수도 있지.”

 

“잉...”

 

“농담이야. 하하. 난 반드시 우승을 할 거야. 50억이 적은 돈은 아니지... 그런데 그것보다 저 5번 부부 때문에 하나 깨달은 사실이 있어.”

 

“깨닫다니?”

 

“인생의 패배자들만 이 게임에 참여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경쟁심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네... 재밌지 않아?”

 

“치... 무엇이 재밌어. 난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싶은데... 루저가 되면 무서워.”

 

효진은 2라운드까지만 하더라도 별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영호만을 믿고 참여한 대회였는데, 3라운드에서 세 쌍의 부부가 탈락하며 컴퍼니 직원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본 후, 마음이 약해져 있었다. 단순히 게임을 떠나서 지독한 현실을 보았고, 또 그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나 승부사잖아?”

 

“칫. 그놈의 승부사... 그래서 지금 이 게임에 참여한 거야?”

 

효진이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영호의 가슴에 비수가 꽂혔다. 영호는 효진의 말이 불쾌했지만, 굳이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내색 할 이유도 없거니와, 내색을 할 정도로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50억 상금 받아서... 한 번 더 겨뤄봐야지.”

 

“또?”

 

영호에게 있어 사실상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물에서 재기를 한다면 먹고 사는 것은 지장이 없었지만, 자신을 패배시킨 희대의 천재 겜블러와 최후의 한판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영호에게 있어 섹스게임 우승 상금 50억은 천재 겜블러에 대한 최소한의 도전장일 뿐이었다.

 

“그 놈에게는 50억은 돈도 아닐 거야... 그런데 최소한 그 정도 돈은 가져가야지... 상대는 해주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무엇보다... 이 섹스 게임도 나름 재밌어... 별 거지 같은 놈년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말을 마친 영호가 민석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영호는 고개를 돌려 충격에 빠져 주저앉아서 멍하니 있는 서영을 쳐다보았다.

 

‘저 여자도 곧 재기하겠지? 쉽게 무너질 여자가 아니야....’

 

영호는 서영이 이렇게 무너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호가 그동안 상대해 왔던 겜블러 중에서는 서영보다 뛰어난 사람은 많았다. - 물론, 서영이 겜블러는 아니었지만 - 그러나 서영 같은 사람은 또 없었다.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상황, 서로를 의심하고 또 경계해야 하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을 믿어 줄 사람을 만들고 또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에 빠졌으면서도 자신은 물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한 번 구하기까지 했다. 이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많은 게임을 해봤지만...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었는데... 믿음은 비상식적인 단어라고 생각해 왔건만...’

 

영호가 민석과 서영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사이에 치킨 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어수선하군요. 하하하. 대충 4라운드 진출자끼리도 대화를 하신 것 같고... 아이고 우리 최민혁님과 김서영님은 아직도... 일어나세요. 하하하. 그러면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저희 직원들이 검은 두건을 씌울 테고, 번거롭지만 집으로 가는 길도 오실 때처럼 조금 돌아서 갑니다. 하하하. 판돈과 상금인 칩 5개를 꼭 받아 가시며... 저 치킨 박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로비 중앙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서 치킨 박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컴퍼니 직원들이 4라운드 진출하는 부부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손에는 검은 두건이 들려 있었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직도 주저앉아 있는 서영의 얼굴은 검은 두건으로 가려졌다.

 

***

 

“엄마, 엄마!”

 

연아가 서영에게 다가왔다.

 

“응? 왜?”

 

“엄마, 어디 아파요?”

 

연아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서영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서영은 연아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약 이틀 간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집에 있는 시간에도 거의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괜찮아. 아프지 않아.”

 

섹스 게임 3라운드를 마치고 돌아 온 서영은 산부인과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는 일이 없었다. 딸인 연아의 밥을 챙겨주는 것을 제외하면, 침대에 누워서 생활을 했다. 몸이 힘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지쳐 있었다. 서영은 울부짖으며 끌려가던 수영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수영을 구하고 싶었지만, 서영은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수영을 보내야만 했다. 그 생각만 하면 서영은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딸인 연아가 있었기에 꾹 참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침대에만 누워 있어요?”

 

“그냥... 조금 힘들어서...”

 

“잉... 연아 심심한데...”

 

“우리 착한 연아... 조금만 참아주지 않을래?”

 

힘겹게 미소를 보이며 서영이 말을 했다. 연아는 그런 서영을 바라보며 작은 머리를 살며시 끄덕거렸다.

 

“좋아요! 연아는 착하니까. 대신에 엄마도 힘내는 거예요!”

 

연아의 격려를 받으며 서영이 다시 한 번 미소를 보여줬다. 연아는 그 모습에 안심이 됐는지, 그때서야 서영에게서 멀어져 거실로 나갔다.

 

“휴우....”

 

연아가 다시 눈앞에서 사라지자 서영의 머릿속에는 수영의 생각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3라운드에서 돌아온 후 서영은 지금까지 민혁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민혁이 원망스러웠다. 또한 민혁 때문에 수영이 탈락했다고 생각했다.

 

“그도... 어쩔 수 없었겠지...”

 

민혁 역시 괴로워하고 있음을 서영은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몇 차례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던 민혁의 모습도 보았지만, 거의 이틀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부쩍 수척해 진 모습이기도 했다. 원망스러웠던 민혁이었지만, 서영은 그를 조금씩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이유가 어찌 됐든, 4라운드 진출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던가. 더구나 민혁이을 떠나서라도 어찌 보면, 수영 부부의 탈락은 막을 수도 없었을 것 같았다. 기권만 하던 5번 부부가 수영 부부에게 투표를 해버렸으니...

 

“영호 부부... 그리고 민석 부부... 언젠가 만나게 되면...”

 

겨우겨우 영수 부부를 탈락시켰더니, 이제는 오히려 원망을 해야 하는 부부가 두 쌍으로 늘어났다. 서영은 그 점이 매우 심적으로 힘들었으나, 수영 부부를 생각하면 꼭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 역시 4라운드 진출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서영은 그래도 용서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진짜... 방법이 없는 걸까?”

 

서영은 수영 부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치킨 박이 패자부활전도 없다고 말을 했기에, 수영 부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없는 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지만, 서영은 계속해서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믿음을 줬던, 또 그렇게 울부짖으며 떠나야 했던, 수영의 모습을 생각해서라도, 서영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아...”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영은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 한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침대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에이스!”

 

 

 

@ 48부에서 이어집니다.

 

서영은 1라운드 게임 참여 장소에 데려다 주었던 택시기사인 ‘에이스’를 떠올렸다. 자신과 헤어지기 직전에 택시기사였던 에이스가 쪽지를 남겼었고, 서영은 남들 몰래 그 쪽지 내용을 읽었고, 또 에이스의 연락처를 머릿속으로 외웠었다.

 

“그... 그가... 위기 상황에 자신에게 연락을 달라고 그랬지... 찬스를 쓰라며...”

 

서영은 에이스가 남겼던 쪽지 내용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에이스가 지시했던 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남편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서영은 에이스의 존재를 기억해 냈고, 왠지 그라면 서영 부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영은 침대에서 일어난 상황에서 대충 옷을 두른 후, 거실로 나갔다. 혼자 놀고 있던 연아가 급하게 뛰어나오는 서영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어... 엄마!”

 

“연아야. 잠시만... 엄마... 앞에 좀 나갔다 올게.”

 

“가... 같이 가면 안 돼요?”

 

“미안... 금방 올게. 조금만 기다려.”

 

“잉...”

 

투정을 부리는 연아를 뒤로하고 서영은 황급히 밖으로 뛰어 나갔다. 거리로 나선 서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느 곳을 생각했는지, 왼쪽 방향으로 몸을 돌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헉... 헉...”

 

서영은 금방 숨이 가빠왔지만, 쉬지 않았다. 서영 부부는 지금 이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몇 분의 시간이 흘렀고, 서영은 여전히 거리를 달리고 있었고, 그녀의 눈에는 익숙한 장면이 들어왔다.

 

“후아.... 후아...”

 

공중전화 박스에 도착한 서영은 숨을 내쉬며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동전을 몇 개 꺼냈다. 수화기를 든 채, 공중전화 동전 투입구에 동전 몇 개를 집어넣었고, 서영은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던 에이스의 전화번호를 차분히 누르기 시작했다.

 

“... 신호가....”

 

서영은 가슴이 떨려왔지만, 다행스럽게도 신호가 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아주 짧은 목소리였지만, 서영은 익숙했다. 자신의 귀가 한 번 들었던 목소리임을 확인시켜주었고, 반가운 마음에 서영이 조금은 큰 목소리로 말을 했다.

 

“에... 에이스?”

 

- ......

 

“에... 에이스 맞죠? 저 기억하세요?”

 

서영의 ‘에이스’라는 부름에 전화를 받은 상대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영은 점점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 에이스라?

 

“에이스가 아닌가요?”

 

- 맞긴 한데...

 

“아... 다행이다.”

 

서영은 철렁거렸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화를 받은 상대가 에이스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 에이스는 맞긴한데... 넌 누구지?

 

뜻밖에도 에이스는 서영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고작 며칠이나 지났다고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서영은 다급한 마음에 두서없이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 얼마 전에... 강원도에서 택시... 탔잖아요. 컴퍼니... 게임에 참여...”

 

- 장난이었어. 훗.

 

당황해 하는 서영의 목소리를 즐겼던 것일까. 에이스는 장난이라며 밝히며 알 수 없는 웃음을 보였다. 서영은 수화기로 에이스의 장난 섞인 웃음소리를 듣고 화가 났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 그런데... 무슨 일이지?

 

“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 벌써 위기 상황인가? 그러면 실망인 걸... 날짜 계산을 해보면 고작 2라운드 혹은 3라운드나 끝났을 것 같은데... 마지막 라운드가 어떻게 되지?

 

“7라운드까지 진행이 되고... 지금 3라운드까지는 통과했어요. 곧 4라운드에 참여할 것 같고...”

 

- 하하하하하.

 

“왜... 왜 웃어요?”

 

- 지금 장난해?

 

수화기를 통해 듣는 에이스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서영은 비록 에이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만 듣고 있었지만, 온 몸이 서늘해질 정도로 공포심을 느껴야했다.

 

“자... 장난 아니에요.”

 

- 나에게는 장난 같이 느껴지는데? 내가 뭐라고 했지? 기억이 안 나? 전체 7라운드 게임에서 아직 절반도 못 끝냈는데... 위기 상황이야? 하하하. 내가 사람을 잘 못 봤군... 이만 끊도록 하지.

 

“아... 안 돼요. 자... 잠깐만 기다려줘요.”

 

서영은 에이스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매우 다급해졌다. 에이스마저 놓치면 수영 부부를 도저히 구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고작 3라운드 통과해놓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이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제... 제발 도와줘요. 조... 조금만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 내가 도와주는 건 일종의 히든카드라고 했었지. 히든카드는 딱 한 번이야. 그런데 4라운드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 히든카드를 써버린다고? 난 이해할 수 없는데...

 

서영은 에이스의 말을 듣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에이스라고 하더라도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도와주기는 하는 건데... 그 히든카드를... 쓰는 건 아니에요.”

 

- 무슨 말이야? 도와주면 도와주는 것이지... 히든카드를 쓰자는 건 아니라니...

 

“그... 그러니까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게임을 도와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제가 아니라 제 친구가 위기에 빠졌어요.”

 

- 친구의 위기라... 하하하하. 이거 골 때리는 년이구만....

 

“제발... 이야기만이라도 들어주세요.”

 

서영은 계속해서 에이스에게 빌 수 밖 에 없었다. 서영의 애틋한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몇 초동안 침묵을 지키던 에이스가 말을 했다.

 

- 좋아. 대신 3분을 주겠어. 요약해서 말해 봐.

 

다행히 에이스의 허락이 떨어졌고, 서영은 1라운드 게임부터 3라운드 게임까지 있었던 일을 최대한 간략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3라운드 게임에서의 수영 부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다시 한 번 강조를 한 서영이었다. 에이스에게 전화를 건 목적이 수영 부부를 구하기였으니...

 

“그래서... 전 그들을 구하고 싶어서...”

 

- 거 참... 지랄하네.

 

“네... 네?”

 

- 지랄한다고...

 

“도와주세요... 제발.”

 

- 이거 누가 누굴 구한단 말이야. 당신 정말 바보 아니야? 자기 앞길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한다고? 어이가 없군.

 

“..........”

 

서영은 에이스의 말에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엄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4라운드 게임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탈락한 사람을 구한다라? 누가 듣더라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자기 코가 석자인 것은 안 보이나?

 

“그렇지만... 구하고 싶어요.”

 

- 당신 빚이 얼마나 돼?

 

에이스가 갑자기 서영이 지고 빚의 액수를 물었다. 서영은 에이스의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약 30억 정도...”

 

- 지랄 맞게 큰돈이군... 아마 참여자들 중에서 당신들 부부가 가장 빚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겠는데? 그건 그렇고 우승 상금이 얼마라고 했지?

 

“치킨 박이라는 사람이 50억이라고 했어요.”

 

- 50억이라... 우승을 하면 빚을 제외하고도 20억이 남는군.

 

에이스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서영은 초조하게 에이스의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 20억이라... 적지 않은 돈이야.

 

“네?”

 

- 무슨 뜻인 줄 몰라? 당장 1억... 아니 몇 천, 몇 백 만원만 쥐어줘도 사람을 대신 죽여주는 세상이야. 그런데 20억이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돈이지...

 

“그... 그럼? 우승을 해서 상금으로 수영 부부를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 그건 나도 몰라. 그러나 분명 가능성은 있어. 치킨 박이 그런 말을 했다며? 루저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으면... 직접 루저가 되어 보거나... 우승을 하거나... 이 말은 곧 우승을 하면 루저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고... 방법이야 알 수 없지만... 상금을 가지고 당신 친구를 살려볼 수는 있겠지.

 

에이스 역시 정확한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서영은 희망의 빛줄기를 발견했다. 우승을 한다면 수영 부부를 살릴 수도 있다는 에이스의 말, 그 말 한 마디가 깊은 절망에 빠졌던 서영을 다시 땅 위로 일어서게 했다.

 

“사... 살릴 수 있는 것이죠?”

 

- 나도 확실히 모른다니까. 그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일 뿐이지. 그리고 일단 우승을 해야 이 가능성을 확인해볼 수 있지 않을까?

 

“... 꼭... 꼭 우승할 거예요.”

 

- 입은 살아 있나 보군. 쉽지가 않을 텐데... 더구나 이야기 들어보니까 3라운드에 만났던 적들... 같이 4라운드에 진출했던 적들... 만만치가 않은 것 같군... 재밌겠어.

 

“이... 이겨낼 수 있어요.”

 

- 비록 3분 동안 짧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생각에는 여전히 쉽지가 않을 것 같은데? 당신 남편이... 역시나... 문제가 크단 말이야.

 

“가... 같이 이겨낼 수 있어요.”

 

- 과연 그럴까? 내가 당신을 선택했으니... 믿어보는 수 밖 에 없지만... 내가 오늘 크게 양보를 하겠어. 히든카드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남겨두지. 대신에 담에는 이런 일 가지고 나에게 연락하지 마.

 

“알겠어요.”

 

- 그리고... 몇 가지 조언을 줄 텐데....

 

서영은 에이스에게 전화를 한 것에 대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 부부를 구할 수 있는 일말의 방법도 제시 받았지만, 또 다시 조언을 들을 수가 있다니...

 

“부탁해요.”

 

- 게임을 포기할 생각이 없나? 내 최고의 조언은 게임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인데...

 

“아... 기억나요. 그러나 이제는 더욱 더 포기할 수 없어요. 친구를 구해야 하니까...”

 

- 참... 오지랖도 넓어서... 쯧쯧. 좋아. 두 가지 조언을 해주겠어. 먼저 더 이상의 친구를 만들지 마. 이 게임은 해봐서 알겠지만, 마음이 약해서는 절대 이기지 못해. 믿음은 부부 사이에서나 가능하지... 이번처럼 다른 참여자와 믿음을 나누면, 그것 역시 일종의 게임이 돼. 서로 믿냐, 안 믿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알겠어?

 

“알겠어요.”

 

- 수영 부부라고 했나? 그들을 구하고 싶으면... 더욱 더 다른 참여자와 손을 잡는 행위를 하지 마. 굳이 함께 하고 싶으면... 반드시 배신 해. 다른 참여자의 눈물에 인정을 보이지 말라는 거야.

 

“... 알았어요.”

 

서영이 에이스의 말에 힘없이 대답을 했다. 배신을 하라는 말, 썩 듣기에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 마지막으로... 조언이 아닐 수도 있으나...

 

“네. 말씀 하세요.”

 

- 행운이 따르기를....

 

“네? 무슨 말이죠?”

 

- 내가 이 말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나 역시 루저 출신이야.

 

“네? 뭐라고요?”

 

서영은 에이스의 말에 깜짝 놀랐다. 에이스가 루저 출신이라니...

 

“루저 출신이라면... 루저가 되면... 그래도 괜찮은 걸까요?”

 

- 하하하하하. 웃기는 소리. 내가 왜 게임에 참여하지 말라고 했을까? 총 100쌍의 부부가 참여했다고 했지? 상금만 타고 게임에 포기할 수 있다고 했지?

 

“네. 이론상으로는 그게 가능해요.”

 

- 좆까는 소리지. 100쌍의 부부 중 우승하는 팀은 딱 한 팀. 나머지 99쌍은 루저가 된다. 그 누구도 게임을 포기하지 못하지. 그게 바로 섹스게임의 마력이야. 그만두어도 되는 상황에 또 다시 게임에 참여하게 만드니까. 물론, 빚이 클수록 마지막까지 갈 수 밖에 없어. 당신 부부 역시 마찬가지야. 그런데 거기에 친구를 구한다고 하니까, 반드시 우승해야겠지?

 

“... 그래야겠죠.”

 

- 결국 당신 부부는 우승 아니면, 루저야. 그런데 루저는 99쌍이 될 것이고... 당신 부부는 어느 쪽일까? 당신! 루저가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모... 몰라요. 치킨 박의 말에는 오히려 위너가 될 수도...”

 

- 아주 개새끼야. 아니 닭대가리라고 해야 되나? 하하하.

 

에이스가 치킨 박에게 욕설을 내뱉은 후,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웃음을 멈추고 이어서 말을 했다.

 

- 죽는다.

 

“네에... 진짜 죽는다고요?”

 

서영은 루저가 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예상을 하긴 했다. 그러나 에이스는 단호하게 루저는 죽는다고 말을 했다.

 

- 나 역시 너무 많은 비밀을 누설해 버리는군. 컴퍼니가 알면... 나 역시 죽은 목숨일 뿐... 루저가 되면 대다수 죽는다. 그리고 그 중 몇은 살아남을 수 있지. 살아남은 사랑 중 몇은 평생 부귀영화도 누릴 수가 있다. 그러나 그건 사람 사는 게 아니지. 어찌 보면... 다 죽는 거나 마찬가지... 나 역시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야.

 

“더... 더 자세히 알려주세요. 루저가 되면... 어떻게 되나요?”

 

- 당신 우승하고 싶지?

 

“네.”

 

- 골때리는년, 양심도 없이 질문을 하는군. 더 이상 말해주면... 당신에게 독이 될 거야. 아는 것이 힘이 될 때도 있지만, 때론 지나치게 알면, 먼저 죽기 마련이지. 내가 왜 행운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을까?

 

“모... 몰라요.”

 

- 당신 부부가 어렵게 우승을 했어.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겠지. 그리고 상금으로 30억의 빚을 갚고, 20억으로 수영 부부를 구한다고 할 때... 이런 생각도 해봐야지.

 

“무슨 생각이요?”

 

서영의 질문에 에이스가 싸늘하게 대답을 했다.

 

- 돈은 있어. 그런데 구하고 싶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어.

 

 

 

@ 49부에서 이어집니다.

 

“그... 말 뜻은?”

 

서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수화기를 통해서 들은 에이스의 말이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 간단히 말해서 현재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 살아 있더라도 당신들이 우승할 때까지 살아 있다는 보장도 없고...

 

“서... 설마요?”

 

서영은 에이스의 말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3라운드 게임이 끝난 지,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수영 부부가 죽었을 수도 있다니...

 

- 믿기지 않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존재해. 물론, 지금 현재 죽었을 확률은 미미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살아 있는 게 힘들지. 루저란 그런 존재니까.

 

“우승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서영이 에이스에게 질문을 했다. 거짓말이라도 에이스의 입을 통해서 수영 부부가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서영이었다. 그러나 에이스의 냉정한 대답이 수화기를 통해 서영의 귀에 전달이 되었다.

 

- 그건 아무도 몰라. 그러나 시간이 촉박하긴 하지. 루저들 중 소수는 살아남겠지만, 대다수는 죽을 텐데... 컴퍼니 입장에서는 어차피 죽을 사람들에게 시간을 더 줘 봐야... 밥만 축 내게 되니까... 그럴 필요가 없겠지.

 

“...... 어쩌죠?”

 

- 어쩌다니...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우승 자체도 행운을 빌어야겠지만... 그만한 행운이 더 있어야 해. 당신 친구들이 그때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행운... 쉽지는 않은 일이지. 그런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못하겠다. 당장 4라운드에서 탈락할 수 있는데... 무엇을 하러 이런 고민과 걱정을 하는 거야?

 

“믿음을... 준 친구니까요.”

 

- 운 좋게 우승하면 빚 30억 갚고... 나머지 20억으로 떵떵거리며 살아. 자식도 있을 것 아니야? 상식을 벗어난 년이야... 쩝.

 

서영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은 에이스가 입맛을 다셨다. 당장 자기 앞길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남을 걱정하는 서영이 에이스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서영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싶은데... 사실 내가 당신을 도와주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다고...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 그건 당신도 이미 예상했을 것이고... 3라운드에서 기도만 했다는 부부? 차라리... 그들이 더 괜찮았네... 사람은 머리를 그렇게 써야지. 에효.

 

수화기를 통해 에이스의 한숨소리를 들은 서영이었다. 서영은 에이스 역시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을 해왔었다. 에이스가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이 우승할 수 있도록 도와줄 이유는 없었기에...

 

“에이스...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 것이죠?”

 

- 그야 돈이지 뭐...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지만... 아직은 알려줄 수가 없어.

 

“왜죠?”

 

- 아까 말했지만... 너무 많이 알면 다친다니까.

 

“이해할 수 없어요.”

 

- 나도 당신을 이해 못하겠다. 왜 이런 미친 고민을 하는지... 하지만... 내 말은 반드시 믿어야 해. 아... 뭐랄까... 내가 여기까지는 말을 해주지.

 

수화기를 통해서 서영은 에이스가 잠시 고민을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에이스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는 듯 했지만 쉽사리 입을 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몇 초의 정적이 흘렀고, 에이스의 목소리가 다시 수화기를 통해 서영의 귀에 전달이 되었다.

 

- 당신 친구를 구하는 건은... 다시 말하지만 많은 행운이 따라야 해. 당신 부부가 우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전까지 당신 친구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승할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해서는 안 돼. 컴퍼니의 수장이 치킨 박이라고 했던가? 그에게도 절대 입을 열어서는 안 돼.

 

“왜죠? 치킨 박과 먼저 거래를 하면 안 되나요?”

 

- 이유는 당신도 알 것 아니야. 거래라고 했던가? 당신은 당장 치킨 박에게 무엇을 걸 수 있는데? 우승을 하면 상금을 내 놓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일단 당장 우승자도 아닌데 그런 제안이 치킨 박에게 먹히겠어? 오히려 당신 약점만 부각되겠지. 치킨 박에게도 먼저 속내를 내비치면 지는 거야. 알겠어?

 

에이스의 따끔 어린 말을 들으며 서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을 정도의 생각이었다. 당장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우승을 조건으로 거래를 한다라?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 알겠어요.”

 

- 그럼 더 이상 당신 친구 이야기는 그만 하지. 할 이유가 없으니까. 이제 초점은 당신과 나의 거래야. 난 당신 부부가 우승을 하면 좋겠어. 내가 일찍 당신들을 선택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전화해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으니까... 나로서도 솔직히 후회가 돼. 왜 당신들을 선택했을까. 우승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직감이 틀린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는 않은 상황이야.

 

에이스의 말에는 서영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미 섹스게임은 시작했고, 벌써 3라운드까지 끝났기 때문에 에이스도 자신의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 난 당신들의 우승을 돕겠어. 하지만... 내가 가진 무기는 딱 한 번만 쓸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당신에게 남긴 쪽지에서도 위급한 상황이나, 승부수를 걸어야 하는 상황에 나에게 연락하라고 했던 것인데... 이렇게 연락이 올 줄은... 마음 같아서는 없던 일로 하고 싶지만... 거래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 했으니...

 

“여... 열심히 할게요.”

 

- 내 말 들어. 다시 말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에게 연락을 해. 솔직히 우승은 장담 못하지만... 내가 돕는다면 최소한 결승전까지는 진출이 가능해. 결승전이 7라운드겠지? 나도 무슨 게임이 나올지 모르니... 그땐 돕기 힘들지만... 7라운드까지는 내가 진출 시켜주겠다는 거야.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고작 3라운드 끝났고... 많은 경쟁자가 남아 있을 거야. 그 상황에서 단 한 번의 기회를 날려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지.

 

“... 네.”

 

-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 그리고 당신도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질문하고 싶겠지. 그런데 지금은 알려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알면 당신이 다칠 테니까. 그건 내 기대도 무너지게 되는 것이고... 나중에 다 알려줄 거야. 그러니까 게임에만 집중을 해. 다른 생각 말고... 4라운드를 통과하고... 기어서라도 5라운드도 통과하란 말이야!

 

비록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었으나 서영은 에이스가 약간은 본심을 내비쳤다고 느껴졌다. 에이스는 약간은 열 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역시 섹스게임의 루저 출신이었기에 컴퍼니에 대한 원망과 한탄이 말 속에서 느껴졌다.

 

“... 알겠어요.”

 

- 마지막으로 또 말하겠어. 앞으로 진짜 기회는 딱 한 번이야. 또 다시 이런 전화를 하면 나 역시 당신을 버릴 수 밖 에 없어. 또한 이 사실은 당신과 나와의 비밀이야.

 

“알겠어요... 정말 중요한 순간에...”

 

- 나 역시 꼭 당신 부부를 결승전에 앉힐 테니까... 나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는 걸 명심해. 결승전에 가 본 사람만이... 그 방법을 아는 것이니까...

 

에이스의 말을 들은 서영은 크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에... 에이스... 결승전에... 최종 라운드에... 진출했었다는 건가요?”

 

서영이 더듬거리며 에이스에게 질문을 했지만, 수화기에서는 더 이상 에이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뚜. 뚜.

 

어떤 인사도 않고 에이스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서영은 에이스가 남긴 마지막 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전화가 끊긴지도 모른 채, 한동안 수화기에 ‘에이스’를 몇 번이나 불러야 했다.

 

“... 끊어 버렸네.”

 

에이스와의 통화가 끝난 사실을 뒤늦게 알아 챈 서영이 진한 아쉬움을 남기며 자신이 들고 있는 수화기를 공중전화기에 다시 걸어놓았다. 에이스와 꽤 긴 시간 통화를 했고, 서영은 생각보다 많은 수확을 걷을 수 있었다.

 

“수영 부부를 살릴 수 있어... 그런데... 정말 행운이 따라야 하네... 내가 우승하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우승할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니...”

 

서영은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수영 부부를 살릴 수 있다는 한줄기 희망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자신을 위해서도 또한 수영 부부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 섹스게임에서 우승을 해야 했다. 그 뒤로는 하늘에 맡겨야 했지만, 서영은 수영 부부가 꼭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에이스가 최종 라운드에 진출했었다니... 마지막에 패배해서... 루저가 되었던 것일?”

 

대화를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에이스와의 통화가 끊겼지만, 서영은 그의 마지막 말을 통해서 에이스가 이전 섹스 게임에서 결승까지 갔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비록 우승을 못했지만 최종 라운드에 진출했던 사람이 도와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것을 서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회는 한 번이라니까... 결국은 우리가 잘해야 될 텐데...”

 

에이스가 결정적인 순간에 도와준다고 하였지만, 서영은 결국에는 게임에 임하는 플레이어, 즉 자신과 민혁이 최선을 다해야만 우승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꼭 해내야 해. 수영 부부도 살려야 하니까...”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서영은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상식을 벗어난 게임들이 펼쳐지더라도 결코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가정을 지키고, 또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는 길거리에 있는 똥이라도 집어 먹어야 할 것이니...

 

***

 

거실에서 혼자 놀던 연아는 현관문 벨 소리에 인터폰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키보다 높은 곳에 있는 인터폰을 향해 말을 했다.

 

“누구세요?”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고, 연아는 올망졸망한 눈으로 인터폰의 화면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화면에는 아무런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도... 둑?”

 

연아는 어린 7살이었지만, 제법 머리가 영특했다. 인터폰 화면에 아무도 보이지 않자 나쁜 사람이 집에 들어오려고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현관문으로 쪼르르 달려가 문이 제대로 잠겨 있음을 확인했다.

 

“도둑놈은 우리 집에 못 들어와요!”

 

연아가 현관문을 바라보며 소리를 쳤다.

 

“경찰 아저씨에게 이를거에요!”

 

다시 한 번 연아가 현관문을 향해 소리를 쳤다.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던 연아는 나쁜 사람이 도망을 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휴...”

 

어린 나이답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연아는 그 순간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꺄아아악!”

 

현관문 아래에 있는 우유 투입구로 어른 손 하나가 불쑥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연아는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에 계속 소리를 지를 수 밖 에 없었다.

 

“꺄아악! 엄마!”

 

연아는 자신이 집에 혼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재빨리 안방으로 달려가 장롱 옆의 좁은 공간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 제발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도둑이 자신에게 오지 말기를 바라며...

 

‘어... 엄마... 아.... 아빠...’

 

연아는 울고 싶었지만 도둑이 자신의 울음소리를 들을까 숨을 죽인 채, 마음속으로 엄마와 아빠를 불렀다. 그리고 그렇게 장롱 옆에서 몸을 움츠린 채 숨을 죽이며 얼마의 시간을 보냈다.

 

“이잉...”

 

한참을 숨어 있던 연아는 집안이 생각보다 조용함을 인식했다. 도둑이 집에는 못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자, 조심스레 장롱 옆에서 벗어나 슬금슬금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는 그 누구도 없었고, 무언가 달라진 모습도 확인할 수 없었다.

 

“문을... 못 부셨구나... 헤헤.”

 

현관에 도달한 연아는 굳건히 집을 지키고 있는 현관문을 바라보며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도둑이 잠긴 문을 어쩌지는 못한 것 같았다.

 

“나쁜 도둑 같으니라고...”

 

연아는 엄마와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자신이 도둑을 몰아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려고 했다. 집을 혼자 지켜냈다는 뿌듯한 감정이 어린아이인 연아를 들뜨게 했는데, 그 순간 그녀의 눈에는 작은 종이가 보였다.

 

“뭐지?”

 

현관문 우유 투입구로 들어온 듯, 연아는 쭈그려 앉은 채, 고사리 같이 작은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웠다.

 

“응? 편지네...”

 

연아는 자신의 손에 들린 편지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아... 집배원 아저씨였구나...”

 

연아는 아까 자신의 집을 방문한 사람이 집배원이라고 생각했다. 집배원을 도둑으로 오인한 자신이 부끄러웠던 연아는 아무도 없는 현관문을 향해 크게 소리를 쳤다.

 

“미안해요. 집배원 아저씨!”

 

연아의 사과에 당연히 대답이 없어야 했지만,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연아가 뒷걸음을 치며 연신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아저씨...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연아의 사과와는 달리 현관문은 열렸다. 그리고 고개를 연신 숙이던 연아는 조심스레 시선을 위로 올렸다.

 

“연아야 무슨 일이니?”

 

에이스와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서영이었다.

 

“아...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래? 그런데 연아 손에 들고 있는 건 무엇이야?”

 

서영은 연아의 작은 손에 들려 있는 종이를 보았다. 그때서야 연아는 방그레 웃으며 서영에게 말을 했다.

 

“집배원 아저씨 다녀갔어요. 그리고 이건 편지에요.”

 

연아가 아무 생각 없이 편지를 든 손을 흔들며 서영에게 말을 했다. 그리고 연아가 들고 있는 편지를 본 서영의 눈은 커져만 갔다.

 

 

 

@ 50부에서 이어집니다.

 

서영을 딸인 연아에게 컴퍼니가 보낸 섹스 게임 초대장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민혁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리고 세 시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서영은 컴퍼니가 보낸 초대장을 뜯지 않았다. 꿋꿋하게 민혁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해가 지고 날이 저물었을 때, 민혁이 집에 돌아왔고, 현관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서영을 보자 잠시 멈칫거렸다.

 

“어서 와. 연아는 밥 먹고 자고 있어.”

 

“... 응”

 

3라운드 게임이 종료가 되고 민혁은 서영과 아예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다. 자신의 아내를 믿지 못한 미안한 감정과 자신의 부부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수영 부부를 탈락시킨 죄책감이 민혁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왔어.”

 

서영이 민혁을 향해 컴퍼니가 보낸 초대장을 손으로 흔들었다. 민혁은 서영이 손에 쥐고 있는 컴퍼니의 섹스게임 초대장을 잠시 바라본 후, 고개를 숙이고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나... 자신 없어.”

 

서영은 민혁의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없다니, 그렇다면 섹스 게임을 이대로 포기하자는 말인가.

 

“이대로 포기하자는 거야?”

 

“.....”

 

서영의 말에 민혁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서영의 가슴도 답답해졌다. 자신 역시 섹스 게임을 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섹스 게임을 피할 수도 없었다. 빚은 30억이었고, 벌써 3라운드를 통과하면서 무수한 치욕을 당해야 했다. 그런데 고작 몇 천 만원의 상금을 가지고 게임을 포기해야한다고? 서영에게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수영 부부도 구해야 하지 않던가.

 

“난 절대 포기 안 해. 아니... 못 해.”

 

서영이 민혁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을 했다. 민혁은 고개를 들어 그런 서영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미... 미친 짓이야... 더 이상 자신이 없어.”

 

“미친 짓이라는 건 알아. 그런데 벌써 3라운드를 통과했잖아. 그동안 많은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고... 또 참았어. 그런데 지금에 와서 포기하자고?”

 

“... 그래도...”

 

“30억의 빚은 어쩔 거야?”

 

“......”

 

서영의 입에서 빚이 30억이라는 말에 민혁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 빚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었다.

 

“30억의 빚... 갚을 수 있어? 난 루저가 되는 것보다... 그게 더 무서워... 우리 연아도 큰 고통을 받을 거야... 도망가서 잡혔던 날을 기억하면...”

 

서영은 지난날 사채업자들에게 잡혀서 딸인 연아의 목숨마저 위협을 당하던 때를 기억했다. 컴퍼니가 주최하는 섹스 게임 역시 서영에게는 큰 고통을 주었지만, 그래도 사채업자들에게 딸의 생명을 위협 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자신은 어머니였다. 그래서 한 몸 희생하면 그만이었지만, 사채업자들은 어린 딸까지 들먹거리며 협박을 했다. 서영으로서는 그게 더 무서웠다.

 

“루저가 되면... 우리 딸은 어떻게 해야 하는데?”

 

민혁은 3라운드에서 세 쌍의 부부가 컴퍼니 직원들에게 끌려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도 가족이 있었겠지만, 치킨 박의 언행을 보자면, 게임에 탈락한 그들은 더 이상 가족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민혁은 자신이 루저가 되면 딸인 연아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을 상상하면 너무나 무섭고 괴로웠다.

 

“휴우... 그러면 이대로 도망가서... 사채업자에게 잡혀 죽으라는 거야. 차라리 우리 세 가족 약을 먹고 죽어버릴까?”

 

“그... 그건...”

 

“나는 죽어도 괜찮아. 하지만... 연아는 살려야 해. 부모가 없는 삶... 우리 연아에게도 고통이겠지만... 난 그래도 연아가 살았으면 좋겠어. 그게 부모 마음이야. 당신도 연아가 죽었으면 좋겠어?”

 

“아... 아니야... 그건 아닌데...”

 

서영 역시 자신들이 루저가 되면 연아가 부모 없이 큰 고통을 겪으며 살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반 자살을 할 수도 없었다. 또한 자신들이 도망쳐서 사채업자에게 잡히면 그것 역시 연아에게 큰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부모는 죽어도 자식은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서영이었다.

 

“이대로 포기하면... 암흑 뿐 이야. 우리 연아가 살아도 죽을 때까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거야. 그러나 섹스게임에 우승하면... 모든 게 해결이 돼.”

 

“우승이 쉽지 않다는 거 알잖아?”

 

“쉽지는 않지만... 기회가 없는 것보다... 이런 기회라도 있어서 도전하는 게 낫다고 생각 안 해? 우리 몸과 마음이 고생을 하겠지만... 살 수 있다는 실 날 같은 희망은 있잖아.”

 

“다... 당신 변했어.”

 

민혁의 말에 서영의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왔다. 자신 역시 짧은 시간에 많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남편인 민혁에게 그 말을 듣자 고통스러웠다.

 

“... 살아야 하니까.”

 

짧은 서영의 말에 민혁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신... 죄책감 가지고 있는 거 알아. 하지만... 이대로 포기해도 답이 없다는 거 알잖아? 피하지 마.”

 

“피하는 게... 아니야.”

 

“당신도 나를 위해서 그랬다는 거 알아.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믿는 게... 어쩌면 비상식일 거야. 그래서 굳이 당신 탓을 하고 싶지는 않아.”

 

“..........”

 

“수영 부부를... 나도 왜 믿었는지... 그 이유는 몰라. 그런데... 그냥 믿고 싶었을 뿐이야. 그리고 나도 그들 부부가 루저가 되어서... 매우 괴로웠어. 고통스럽고... 게임에 참여하기 싫었어.”

 

“.... 미... 미안해... 내가... 정말...”

 

민혁은 3라운드 세 번째 게임 투표 결과를 치킨 박이 발표하던 때를 기억하면 너무나 괴로웠다. 자신의 언행 때문에 수영 부부가 탈락했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큰 죄책감으로 다가와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나에게 미안해 할 이유는 없어... 당신 역시 우리를 위해서... 그랬던 거니까. 대신에... 수영 부부에게 미안해야겠지. 나도 미안하니까...”

 

“... 그때는... 내가...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겠어. 계속 길을 걸으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는데... 내가 왜 그들을... 그렇게 못 믿었을까... 아니... 미워했을까...”

 

말을 하면서 민혁은 계속 괴로워했다. 루저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 길은 없었으나, 민혁은 자신이 수영 부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생각에 제정신을 차릴 수조차 없었다.

 

“미안하면... 구해야지.”

 

괴로워하는 민혁을 바라보며 서영이 단호하게 말을 했다.

 

“구....하다니?”

 

서영의 말을 듣고 민혁은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루저가 된 수영 부부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방법은 몰라. 그런데 우리가 우승하면... 그 방법이 생길 지도 몰라.”

 

“무슨 말이야?”

 

“치킨 박이 분명 그랬어. 루저를 알고 싶으면 루저가 되거나... 우승을 하라고...”

 

“... 마... 맞아.”

 

“우승 상금은 50억... 우리가 빚 30억을 갚아도... 20억이라는 큰돈이 남아. 내 생각에는 그 20억 정도면 수영 부부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몇 백, 몇 천 만원이면 사람도 죽여주는 시대라잖아.”

 

서영은 에이스에게 들은 대로 똑같이 민혁에게 말을 했다. 민혁은 비교적 서영의 입에서 잔인한 말이 나왔지만,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로지 50억이라는 우승 상금에 집중을 할 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방법은 몰라. 그러나 20억이면 치킨 박과 거래를 해서라도... 수영 부부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그럴 수도...”

 

민혁은 서영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20억은 적지 않은 돈이었다. 아니, 일반 서민은 평생을 일해도 만질 수조차 없는 돈이었다. 그 정도 돈이면 사람 목숨을 못 구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우승해야 돼. 쉽지가 않겠지만... 20억을 포기해서라도 수영 부부를 구해야만... 우리는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거야.”

 

말을 마친 서영이 민혁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우승을 했을 경우 빚을 갚더라도 또 다시 20억을 포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억만 있어도 인생 역전이 충분히 가능한 돈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