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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딩동 딩동…… ”

요란한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쓰라린 뱃속이 찢어질 듯이 아파 왔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며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고 하였다. 

“ 누구세요? ”
“ 저예요, 혜인이…… ”
“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
“ 죄송해요…… ”
“ 돌아가…… ”
“ 잠깐만요. 저, 오빠 얼굴만 보고 갈게요. ”
“ 기다려…… ”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현관문을 열어 주려고 잠금장치의 레버를 돌렸다. 그리고 문을 열어 주려고 손잡이를 돌리려다 그만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 문을 열고 들어온 혜인이, 그 애가 다급하게 쓰러져 있는 나를 부축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듯 하였다. 

난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하고 말았다. 
하나 뿐인 여동생, 가족이라고 해 봐야 둘 뿐이었는데, 동생 지은이 마저 교통사고로 잃고 말았던 것이다. 

지은이는 바람이 불면 날려 갈 것은 풀잎 같이 여리고 귀여운 소녀였다. 그런 지은이가 학교에 갔다 오던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그만 과속으로 돌진하는 차에 치이고 마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한건 그 후의 일이었다. 아무런 외상은 없었지만 심한 뇌진탕으로 깨어나지도 못하고 그저 눈만 멀뚱히 뜨고 있는 지은이를 보는 내심정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기를 6개월을 보냈다. 

현대의학으로도 명확한 답이 없고 어쩔 수 없는 뇌사상태였기에 이젠 의사들도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지은이의 상태를 너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만이 지은이가 깨어날 것을 믿고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매일 병원에 들러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을 닦아 주었다. 

그런데 우연일까… 
지은이가 그렇게 누워있을 때, 사고로 여자애가 실명해서 입원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뇌사상태의 지은이를 돌보고 있는 내가 딱해 보였는지 아니면 인연이 되려고 하였던지 병원측에서 나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그들도 먼저 지은이에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이왕 그렇게 됐으니, 좋은 일하는 셈치고 나중에 안구를 기증해 주었으면 하였다. 처음엔 어처구니 없는 제의였고 아직도 지은이는 살아 있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그 얘기를 듣지도 않고 나와 버렸다. 

그런데 며칠 후 그 애의 부모가 나를 찾아왔다. 그들을 보자 첫눈에 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사랑하는 동생이 반드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데 그들은 지은이에게서 마지막 희망을 뺏어 가려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그래서 처음엔 그들을 차갑게 대했다. 하지만 그들은 몇 번 찾아왔고 나에게 아무 것도 안 해줘도 된다며 그냥 얘기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자기들도 우리 지은이가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도 안타까운 딸아이의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만나다 보니 조금씩 그들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 애도 그들에겐 하나뿐인 소중한 외동딸이었다. 그리고 지은이와 같은 18살 소녀였다. 18살이면 살아온 날보다도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꿈 많은 나이였다. 그런 애가 앞도 못보고 캄캄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그 애에 대한 호기심이 약간 생겼고 그래서 몰래 병실로 찾아가 보았다. 

열린 문틈으로 살짝 볼 수 있었는데 그 애는 눈에 붕대로 감고 누워 있었는데 막 잠든 듯 보였다. 막상 그 애를 보니 눈앞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나왔다. 그 애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보조 침대에 앉아서 그 애의 작은 하얀 손을 꼬옥 쥐고 있었다. 너무도 애처로운 모습에 너무도 안되어 보였다. 그래도 나의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한 가닥의 끈이라도 붙잡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지은이를 꼭 회복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지은이는 안타깝게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제는 수도 없이 주사바늘을 꽃아 대서 온 팔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하루가 다르게 바짝 말라 가는 지은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지은이 대신에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태였다. 

내가 그 애를 살짝 보고 온 다음 날이었다. 끝내 지은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도 못하고 그리고 눈만 멀뚱하게 뜨고 나에게 말 한마디 못한 채 지은이는 가 버리고 말았다. 그 후의 일은 지은이로부터 안구를 기증받을 여자애와의 수술이 이루어졌다. 나는 그 일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수술은 성공리에 이루어졌고 그 애도 매우 건강하다는 것이었다.

지은이는 화장을 했다. 난 울어서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지은이를 평소에 좋아하던 바닷가에 뿌려 주었다. 피지도 못하고 져 버린 꽃과 같은 지은이에게 하늘나라에서 만큼은 행복하게 잘 살라고 하며 지은이를 내게서 영원히 떠나 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지은이를 잊어버리려고 하였다. 하지만 도저히 그러지를 못하였다. 집에 돌아와 지은이가 평소에 소중히 여기고 애지중지하던 물건들을 바라보고 쌓여만 가는 먼지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은이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오빠로써 하나뿐인 지은이를 살려 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혼자라는 외로움도 견디기 어려웠다. 맨 정신으로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면 모든 것을 잊어 버릴 수가 있었다. 술에 취한 순간만은 괜찮았다. 

그 이후 나의 생활은 거의 술로 연명하다시피 하였고 밥 보다는 술에 의존하였다. 직장도 맨날 술만 퍼 마시다 보니 쫓겨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지만 도저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장도 그만두고 말았다. 

‘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그리고 대구지하철… ’

언젠가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가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 떠나간 사람보다도 살아남은 이들과 그 가족들이 더 큰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보낸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스런 나날들, 살아남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통, 그들의 심정이 지금의 나와 별다를 게 없을 것이었다. 

혜인이, 혜인이는 바로 지은이의 안구를 이식받은 바로 그 애이다. 병원에서부터 몇 번 만나긴 했지만 혜인이를 보면 해맑은 지은이의 눈동자가 생각나서 그 애와 만나는 것을 일부러 피하고 있었다. 그 애가 퇴원하는 날, 한번 찾아갔는데 그 애의 부모들도 나를 반기면서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마치 한 가족처럼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성의라도 표시하고 싶다며 나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하지만 난 그것을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의 실랑이가 이어졌지만 난 끝까지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들도 더 이상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마지막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지켜 주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붕대를 풀어 버린 혜인이의 얼굴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그 애는 침대에 앉아 있었는데 환자복을 벗어 버리고 몸에 붙는 긴 치마와 티셔츠의 가벼운 캐주얼로 갈아입은 모습은 너무도 예쁘고 귀여웠다. 그리고 그 애 어머니가 끝내 최소한의 성의표시를 거절하는 나에게 미안했던지 옆에 앉아 손을 잡으며 꼭 나중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그 애에게 다짐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 애는 어머니의 말에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살짝 쳐다보며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너무도 귀여웠다.

그 후 혜인이는 나에게 자주 전화도 하고 친해지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만날 수가 없었다. 혜인이를 만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혜인이를 만나면 자꾸 지은이 생각이 나서 그 애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혜인이는 나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회사앞으로 날 찾아온 적도 있었다. 전화를 받고서 혜인이를 커피숍에서 만났다. 혜인이에게 난 단호하게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혜인이가 싫어서도, 귀찮아서도 아니고 단지 지은이를 잊어 보려고 그랬다. 

“ 이제 전화하지마. ”
“ 오빠, 제발…… ”
“ 다신, 다시는 날 찾아오지마. 그리고 제발 그 오빠란 소리도 하지 말고…… 알겠니? 열심히 잘살아야 돼. 우리 지은이 몫까지…… ”
“ 오빠…… 아니… 아, 아저씨…… ”

금방 오빠라고 했다가 내 표정을 보더니 내가 싫어한다는 걸 알고 이내 말을 바꾸었다. 그리고 한동안 내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제가 그렇게 싫어요? ”
“ ………… ”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혜인이는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것 같았다. 금새 눈물을 글썽거렸다. 

‘ 이 애도 지은이 처럼 해맑은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있구나…… ’

“ 아니, 그런 게 아니라…… ”
“ ………… ”
“ 내가 왜 널 싫어 하겠니? 이렇게 착하고 예쁜데… 다만 널 보면…… ”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자 혜인이가 그런 나를 보더니 물었다. 

“ 동생 생각나시는 거죠? 그렇쵸? 저를 보면 예쁜 동생 생각이 나서 그러죠? ”
“ ………… ”
“ 오빠, 제가 동생해 드릴게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
“ 고맙다…… ”

그 날은 어쩔 수 없이 혜인이를 달래어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예 전화도 꺼 놓고 지냈다. 전보다 술이 심해졌고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혜인이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내가 있는 아파트를 알아내고 찾아왔던 것이다.

어제도 소주를 안주없이 들이키고 그리고 술기운에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눈을 뜬 것은 다음날 혜인이가 와서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깨었는데 벌써 밥 구경한지 오래고 그렇다 보니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찾아온 혜인이에게 문을 열어 주려고 하는 순간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밤새 마신 술 때문에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떴다. 

“ 아으으……… ”

그런데 머리맡에 다소곳이 두 다리를 모으고 앉아 있는 지은이가 보였다. 

“ 오빠,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
“ 응…… ”

고개를 들어 나를 걱정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는 지은이의 슬픈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은이도 나를 내려다 보았다. 지은이다. 분명 틀림없는 지은이였다. 

“ 지… 지은아…… ”
“ 오빠…… ”

그런데 지은이의 얼굴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혜인이 그 애의 얼굴로 바뀌고 있었다. 다시 한번 지은이를 올려다 보았다. 다시 한번 봐도 옆에 앉아 있는 건 지은이가 아닌 분명 혜인이였다. 혜인이의 얼굴에서 잠깐 동안이었지만 동생 지은이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었다. 

‘ 내가 그렇게 몸이 허해졌나… 혜인이를 지은이로 보일 정도로…… ’

내가 술 먹고 들어오는 날이면 항상 지은이가 혜인이처럼 그렇게 옆에 앉아 있었다. 밤새 뜬눈으로 옆에 앉아 내가 일어나길 기다리며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시원한 꿀물을 타서 주곤 했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혜인이가 지은이로 보이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 오빠…… ”

그 때 혜인이가 나를 살짝 흔들었다. 그제서야 나는 지은이의 환영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돌아온 나의 여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