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혜인이가 왔다 가고 며칠 동안은 술도 안 먹고 조용하게 지냈다. 그리고 다시 일자리도 알아보려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래도 전에 하던 일이 젤 낫지 싶었다. 하지만 발 품만 팔고 다닐 뿐 쉽사리 자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다시 오라고 하면 좋으련만… 힘들게 돌아다니다 다리가 아파서 잠시 쉬어 가려고 길가의 벤치에 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혜인이 그 애가 너무 보고 싶었다. 전에는 전화하는 게 귀찮게만 느껴졌는데 왜인지 이상하게도 자꾸만 혜인이가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전화를 걸기도 쑥스러웠다.
저녁 무렵, 집에 들어와 대충 씻고나서 쉬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 여보세요? ”
“ 저… 혜인이엄마인데요. ”
“ 네? 안녕하세요? ”
“ 네, 잘 지냈어요? ”
“ 예, 덕분에 저도… ”
“ 저기, 혜인이가 하도 졸라서 반찬이랑 그리고 시장 봐가지고 왔는데…… ”
“ 그러세요? 그런데 왜 오시지 않고… ”
혜인이엄마가 조금 머뭇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전화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었다.
“ ………… ”
대답을 안하고 그냥 가만히 있더니 다시 혜인이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저기… 여기 아파트 앞인데 들어가기가 뭐해서요… ”
“ 왜……? ”
나는 왜 그런지 궁금하였다. 그냥 들어오지 않고 무거운 짐을 들고 밖에서 서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 혹시나 해서 그러죠… ”
“ 네에? ”
“ 저기… 전 여기 처음이고 여자친구라도 있으면 곤란하잖아요… ”
“ 그렇네요… 정말… 하하하… 괜찮아요. ”
이제야 난 혜인이엄마가 머뭇거리며 오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정말 혼자 있는 거죠? ”
“ 네, 올라오세요. 다행이 저 혼자예요. ”
혜인이 엄마는 성격이 많이 조신한 편인가 보다. 갑자기 찾아가면 내가 당황해 할까 봐 미리 전화를 했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미리 현관문을 열고 복도에 나가 혜인이어머니를 기다렸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우리층에서 멈추는 소리가 나고 이내 양손에 비닐봉투를 든 혜인이어머니가 나타났다. 나는 나가서 혜인이어머니가 들고 있는 것을 받아들였다.
“ 고마워요. ”
“ 들어오세요. ”
혜인이어머니는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한번 삥 둘러보더니 말하였다.
“ 아까 밖에서 보니 너무 작아 보이던데… 들어와 보니 집이 참 좋네요. 아담하고… ”
“ 고맙습니다. 그런데 혜인이가 괜한 얘기를 했나 봐요. 힘들게 여기까지 오시게 만들고…… ”
“ 아니요, 그런 소리 마세요. 당연한 걸요. 그리고 얘기 다 들었어요. 다시는 그런 짓 말아요. 젊다고 몸이 무슨 무쇤 줄 알아요. ”
“ ………… ”
혜인이어머니는 괜찮다며 손을 저어 보였다. 난 괜히 무안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혜인이어머니를 거실로 맞아들였다.
“ 들어오세요. 누추하지만… 그런데 혜인이가 정말 많이 졸랐나 봐요. 그냥 반찬만 조금 보내 주시면 되는데 직접 다 오시고… ”
“ 우리 혜인이 고집은 아무도 못 말려요. 뭐든지 해줘야지… 그리고 이야기 들어보니까 어찌 사는지 한번 안 와 보고는 못 배기겠던데요 ”
혜인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얘기를 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 네에…… ”
“ 참, 그거 주세요. 내가 정리하게, 냉장고에 넣어야…… ”
그러면서 혜인이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제서야 생각난 듯 받아 들고 있던 봉투를 다시 건네려다가 식탁으로 가서 내려놓았다. 그러자 혜인이어머니가 내 옆으로 와서 하나씩 꺼내 놓기 시작하였다. 하나는 집에서 장만해온 반찬이 통에 가득 들어 있는 듯 하였다.
“ 이건 내가 만든 밑반찬인데 냉장고에 넣어 놓을게요. 식사하실 때 천천히 꺼내 드세요. ”
“ 네, 너무 고맙습니다. ”
“ 뭘요? 당연한 건데…… ”
“ ………… ”
혜인이어머니는 얘기도중 계속 당연하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좀 거북스러웠다. 어쩔 수가 없는 걸까 이 여자도 나를 대하는 게 영 불편하다.
‘ 자기 딸의 은인이라고 생각해서일까… 꼭 뭔가를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제발 안해 줬으면… 그냥 편하게 대해주면 안될까… ’
“ 저기… 혜인이 어머님, 그냥 편하게 생각하세요. 사실 제가 더 불편하거든요. ”
“ 그래도 되겠어요? ”
“ 네, 물론이에요. 그리고 한참 어린 동생 뻘인데요, 뭐… 그리고…… ”
“ 그리고요? ”
혜인이 어머니가 그렇게 되물어 오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 혜인이가 설마 우리사이를 얘기한 걸까… ’
날카로운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 아… 아뇨… 그냥 편하게 말 놓으시라고요… ”
“ 그래도 되겠어요? ”
“ 그렇게 하세요. ”
혜인이어머니는 내가 열어 준 냉장고에 자기가 가져온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넣었다. 난 옆에 서서 뭐가 어디 있는 지 모르는 혜인이어머니를 도와주고 있었다.
서있던 혜인이어머니가 내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잘록한 허리의 선과 뒤로 내밀다 보니 유난히 튀어나온 탐스런 엉덩이가 나의 눈앞에 들어오고 말았고 난 혜인이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고 말았다. 기분이 조금 이상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 때, 방에서 휴대폰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혜인이어머니는 나를 돌아보았다. 나도 혜인이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 난 괜찮아요. 끊기겠어요. 어서 가서 전화받아요. 여자친구인가 봐요. ”
“ ………… ”
그렇게 말하면서 혜인이어머니가 나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듯이 나를 보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난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였다.
“ 아뇨 전 사귀는 여자 없는데…… ”
“ 호호호, 어서 가 봐요. 정말 끊기겠어요. ”
“ 아, 네…… ”
난 급하게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벨과 동시에 울리는 진동으로 해 놓아서 인지 전화기가 탁자에서 떨어지려는 듯이 위태하였다. 난 끊어지려는 전화기를 급하게 집어 들었다.
“ 여보세요? ”
“ 오빠, 왜 늦게 받아? 난 뭔 일 있는 줄 알았잖아? ”
“ 응, 혜인이구나… ”
“ 지금 우리 엄마 거기 있죠? ”
“ 응, 금방 오셨어… ”
“ 알아요, 오빠. 제가 억지로 보냈어요. 오빠가 또 밥 안 먹고 그럴까 봐… ”
“ 괜한 짓 했어. 혼자서도 잘 챙겨 먹는 데… ”
“ 우리 엄마 음식 잘해요. 얼마나 맛있다고요. 맛있는 거 많이 해 달라고 하세요. ”
“ 그럼, 내가 너무 미안하잖니… ”
“ 오빠, 우리 엄마 싫은 거 아니죠? ”
“ ………… ”
“ 나, 오빠 많이 좋아하잖아요. 그럼 오빤 우리 엄마 좋아해 줘요. 알았죠? ”
“ 알았어. 응, 그래 공부 잘해…… ”
“ 네에…… ”
어째 대답이 시원찮다. 그러더니 혜인이가 다시 말하였다.
“ 그런데 요즘 공부가 하나도 안돼요. ”
“ 왜?? ”
“ 왜긴 왜예요. 다 오빠 때문이지…… ”
“ 뭐어?? ”
“ 오빠, 사랑한다는 말 해주세요. 그럼, 저 공부 열심히 할게요. ”
“ ………… ”
“ 아잉, 제발…… ”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애교를 부리고 또,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데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 혜… 혜인아 사랑해… ”
“ 정말요?
“ 응……
“ 오빠, 저 지금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고마워요. 저도 사랑해요. ”
“ 고마워… ”
“ 이제 끊을께요. 참, 요번 토요일에 가도 되죠? ”
“ 응, 그래…… ”
“ 오빠, 너무 보고 싶다… ”
“ ………… ”
혜인이와 통화를 하고 다시 거실로 나오니 거실 겸 부엌에서 혜인이어머니가 팔을 걷어 올리고 한창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드러난 살결이 너무도 하얗게 보였다. 그리고 그 뒷모습에서 혜인이어머니가 아닌 또 다른 여성이 느껴졌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들썩거리는 몸매, 살 오른 엉덩이… 그것은 입고 있는 치마가 힘겹게 감싸고 있었다. 혜인이 어머니의 엉덩이는 너무도 요염하게 흔들거렸다. 그리고 무릎 아래로 드러난 팽팽하게 당겨져 긴장된 종아리 근육, 진한 커피색의 스타킹이 감싸고 있는 예쁜 발, 그리고 가느다란 발목, 내가 다가 오는 걸 느꼈는지 살짝 돌아다 보면서 드러나는 뚜렷한 목선, 처음이라 어색하지만 나에게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매혹적인 눈… 무르익은 성숙한 여성의 냄새가 물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 여자 친구 맞죠? ”
“ 네, 너무도 예쁘고 귀여운 여자친구예요. ”
“ 호호호…… 좋겠어요. ”
“ 네, 그럼요. 혜인이는 정말 착해요. ”
“ 어머…? 그럼, 우리 혜인이가… ? ”
“ 네, 혜인이 전화예요. ”
그러자 혜인이어머니는 이제 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리고 얘기를 계속하였다.
“ 고마워요. 좋아해 줘서… 우리 혜인이 알고 보면 예쁘고 착하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요. 그래서 더욱 오빠가 생겼다는 것이 좋은 가 봐요. 따뜻하게 대해 주세요. ”
“ 네에… 그럼…? ”
“ 괜찮아요. 우리 혜인이와 사귀는 거… 우리에게, 혜인이에게 가장 소중한 걸 주셨잖아요. 저도 혜인이를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
“ 그런 말씀 마세요. ”
“ 아니에요. 전 뭐든지 도와 드리고 싶어요… ”
“ ………… ”
“ 내가 적극적으로 밀어 줄게요. ”
다른 사람이라면 화부터 내고 다신 만나지 말라고 할 텐데 이렇게 딸의 문제를 너무도 쉽게 이해해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 하지만 혜인이와 난 아직… 아직은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
그런 혜인이어머니가 너무도 고마웠고, 그런 고마운 마음에 난 다시 옆에 서서 혜인이어머니를 도와주고 있었다.
돌아온 여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