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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난 혜인이가 버스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걸 보고 다시 아파트 주차장으로 갔다. 그리고 차를 몰고 출근을 하였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들어가기가 오래간만이라서인지 많이 어색하였다. 혜인이 때문에 조금 꾸물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늦진 않았는데도 안을 들여다보니 벌써 다들 출근을 다한 모양이었다. 어색한 기분이지만 하는 수 없이 회사 사무실로 들어섰다. 

‘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가장 먼저 출근하면 이런 느낌이 전혀 없을 텐데… ’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다들 바쁜지 나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제일 안쪽에 앉아 있는 이 과장이 보였다. 

“ 과장님! 저 왔습니다. ”
“ 아! 김 진우씨 어서 와요… 다시 보게 되서 반가워요… ”
“ 다시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

그제서야 나의 출현을 알아차린 듯 직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난 이 과장이 일어나 내미는 손을 잡으며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이 과장은 사무실 식구들에게 날 다시 소개 시켰다. 거의 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었기에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새로운 기분으로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다른 변화는 없고 아마 내가 그만두고 난 후의 대타인 듯 남자직원이 한 명 늘어 있었다. 

“ 여긴, 김 용식씨… ”
“ 안녕하세요… 김 진웁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
“ 네, 말씀 많이 들었어요… 김 용식입니다. ”
“ 그리고, 알지? 우리 사무실의 꽃 김 은정씨… ”
“ 네… ”

그러자 은정이가 반갑다는 듯이 나에게 손을 살짝 내밀었다. 난 사양하지 않고 은정이의 손을 맞잡아 주었다. 그 순간 은정이가 나에게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은정이와 난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다. 전에 내가 거의 일방적으로 그녀를 조금 좋아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고 나도 몇 번 그러다가 포기 했었다. 회식자리에서 괜히 과장님이 나란히 앉은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잘 어울린다고 사귀어 보라는 말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몇 번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그녀가 한번도 받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었는진 모르지만 전에 나에게 관심도 없고 매정하게 거절하였다. 

“ 자아, 인사는 그쯤 하면 됐고 오늘은 김 진우씨도 돌아왔으니 저녁때 간단하게 한잔 어때? ”
“ 와… 과장님 멋쟁이… ”
“ 좋아요… ”

다들 그 말에 신이나 난리였다. 전에는 가끔 한잔씩 했는데 그 동안 바빠서 일만하느라 그런 여유가 전혀 없었는 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난 과장님이 미리 마련해 놓은 새 책상에 앉아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현재 진행 중인 공사에 관한 서류부터 과장은 내게 보여 주었다. 그게 다른 무엇보다도 급한 것 같았다. 한참을 뒤적거리는데 느낌 이상해서 고개를 들고 보니 맞은편에 앉은 은정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하는 척 하였지만 그녀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

뭐가 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첫날 하루일과를 보내고 저녁시간이었다. 
전에 자주 갔었던 술집에서 직원들과 다같이 조촐하게 소주를 한잔했다. 늦을 것 같은 생각에 미리 혜인이에게 전화를 해서 어머니랑 같이 먼저 저녁 먹으라고 그리고 일찍 들어 갈거라 말해 놓았다. 과장은 바쁜 시간 내어 오래 만에 마련한 회식자리고 또 아끼는 내가 돌아와서 그런지 많이 흐뭇해 하는 표정이었다. 

“ 참, 김 진우씨 그만두고 나서 나도 동생이야기 전해 들었어… 동생 일은 안됐지만 산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되지 않겠나… 그럴 수록 열심히 살아야 돼… ”
“ 네에… ”

과장은 나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며 힘들어도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좋은 일 있을 거라며 나를 격려하고는 술잔을 채워 주셨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던 은정이 나를 쳐다보았다. 

‘ 내가 다시오니 없던 관심이 새로 생겼나? 자기 눈엔 내가 불쌍하게 보이겠지… 하나뿐인 동생 마저 잃고… ’

전엔 정말 나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차갑게 느껴 졌었다. 동생 지은이의 일로 나를 동정하는 마음에 조금 관심을 갖는 것이라 여겼다. 나의 처지가 자신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1차가 끝나자 밖으로 나왔다. 과장님은 먼저 들어가시고, 그리고 젊은 사람들끼리 기분도 좋은 데 나이트를 가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난 집에서 기다리는 혜인이 생각에 살짝 빠져 나올려고 하였다. 

“ 전, 먼저 들어가 볼게요… 첫날부터 무리하면 안될 것 같아요… ”
“ 김 진우씨, 그러지 말고 같이 갑시다. ”
“ 고맙지만 볼일도 좀 있고… 오늘은 좀 봐주세요… 다음엔 같이 가도록 할게요… ”

다른 남자직원들이 같이가자며 나를 붙잡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난 거절하고 돌아서려는 하였다. 옆에 서 있던 은정이가 살며시 나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 아이, 진우씨 같이 가요… 집에 가면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빼지 말고… ”

난 많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빠지겠다는데 은정이가 친한 척하며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살며시 팔이 은정이의 가슴에 살짝 닿았다. 옆에 직원들이 모두 날 쳐다보고 서있었다. 사실 은정이는 회사에서 꽤 인기가 있는 여자다. 

“ 전 됐어요… 들어갈게요… 은정씨라도 같이 가서 재밌게 놀아요… ”

아마도 그녀가 오래만에 마신 술기운에 괜히 그런다고 생각했다. 난 어색한 은정이의 팔을 조심스럽게 떼어 냈다. 은정이는 무안하고 아쉽다는 듯 멍하니 서 있었고 그리고 난 동료들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버스를 탓다. 그렇게 많이 마신 것은 아니었지만 술 때문에 차는 회사에 두고 버스를 탔던 것이다. 동생 지은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술을 먹으면 차는 두고 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가 아니란 생각에 더욱 그러 하였다. 집에서 기다리는 혜인이와 혜인이어머니를 생각하며 눈을 잠시 감았다. 다시 눈을 뜨고 보니 버스는 아파트 근처에 거의 다와 가고 있었다. 황급히 일어나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차창 밖을 한번 더 확인하고는 벨을 눌렀다.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는데 엘리베이터가 있는 현관 입구에 혜인이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웬 아줌마가 있었는데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이 보였다. 

‘ 저 여잔 누구지? ’

내가 가까이 가자 나를 발견한 혜인이가 반가운 듯이 달려와 나를 맞아 주었다. 

“ 오빤 첫날부터 술이야… ”
“ 미안하다, 혜인아… 그래서 일찍 왔잖아… ”
“ 어서 올라가요… ”

난 혜인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러는 동안 같이 서있던 여자가 다가왔다. 나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나도 혜인이의 손을 놓고는 인사를 하였다. 

“ 안녕하세요… ”
“ 아… 안녕하세요… ”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옆집에 사는 아줌마였다. 전에도 가끔 마주치긴 했는데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니라서 밤이고 또 술기운에 멀리서 못 알아 보았던 거였다. 


“ 어머, 술 냄새… 술 많이 드셨나 봐… ”
“ 네에, 조금 했어요… ”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혜인이의 손을 잡으며 타려고 하는데 옆집 아줌마는 타려고 하지 않았다. 

“ 올라가지 않으세요? ”
“ 네, 전 손님 기다려요… 친구가 오기로 했는데 아직… 먼저들 들어가세요… ”
“ 그러세요. 그럼, 담에 뵐게요. ”

우리는 단둘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저 여자 어떻게 된 거야? ”

난 혜인이에게 궁금해 하며 물었다. 그러자 혜인이는 웃으며선 그 여자에 대해 재잘거렸다. 

“ 응, 오빠 학교 갔다와서 엄마가 집 앞 복도가 지저분하다며 나보고 청소를 해라고 해서 비질을 하는데 옆집에서 그 아줌마가 내다보잖아… 그래서 인사를 했더니 막 이것저것 물어보잖아… 그래서 조금 이야기하다 보니 친해졌어. 그리고 아까 오빠 마중 나왔는데 조금 있으니 그 여자도 내려오잖아 그래서 같이 기다리게 된 거야… ”
“ 응, 그랬어? 잘 했어, 어차피 나중에 옆집에서도 알고 나면… 옆집 사람은 자주 만나니까… ”
“ 오빠, 그 아줌마가 나보고 뭐라는 지 알아? ”
“ 응? 뭐라고 했는데…? ”
“ 첨엔 학생이라고 하더니 나중엔 오빠랑 같이 사는 그런 사이라니깐… 나보고 새댁이래, 호호호… ”
“ 핫핫하핫… 너무했다. 혜인이가 새댁이라… 너무 오바한 거 아냐? ”
“ 치이, 새댁이 뭐야? 어린 학생보고… ”
“ 새댁!!! ”

내도 조금 놀려대며 새댁이라고 부르자 혜인이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그렇게 부르지 말라는 듯이 크게 날 불렀다. 

“ 오빠!!! ”
“ 하하하하… ”
“ 참, 그리고 오빠… 요번 일요일엔 아파트 복도 물청소한대… ”
“ 응, 그래… ”

그래도 그 말에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자신을 어리게 봐주지 않고 새댁이라고 불러 주니 기분이 좋은 가 보다. 난 혜인이를 살며시 껴안았다. 아직 나랑 결혼한 것도 아닌데 처음 듣는 새댁이라는 말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혜인이가 더욱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 여자가 생각하기에 혜인이에게 어울리는 적당한 호칭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불렀다고 생각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혜인이어머니가 문을 열어 주며 반갑게 나를 맞았다. 

“ 다녀왔습니다. ”
“ 어서 들어와요. 저녁은? ”
“ 괜찮아요. ”
“ 그래도 조금 들어요. 준비할 테니깐 가서 씻고 와요. ”
“ 네에…… ”

난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차려 준 식탁에 앉았다. 혜인이는 공부한다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그녀가 마주보며 앉았다. 

“ 낮에 혼자 계시기 심심하셨죠? ”
“ 아니, 밖에 나갔다가 왔어… 집에 들렀다가 시장도 볼 겸해서… ”
“ 잘하셨네요. ”
“ 참, 진우씨 식성을 몰라서 뭘 사야될지 모르겠어… 혜인이는 아무거나 잘 먹는데… ”
“ 저도 가리는 건 없어요. 바다에서 나는 걸 특히 좋아해요. 생선같은 거… ”
“ 그렇군요. 혜인이는 고기를 좋아하는데… ”
“ 고맙습니다. 여러 가지로 신경 써 주셔서… ”
“ ………… ” 

단둘이 앉아서 있기가 거북하고 어색해서 그런지 그녀도 혜인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우린 평범한 장모와 사위 관계가 될 수 없는 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난 그녀를 간절히 원하고 그녀도 마찬가지인 듯 나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듯 했다. 남자와 여자, 그녀를 혜인이의 엄마란 느낌 보다는 여자란 느낌으로 보고는 있지만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서 단순히 혜인이의 어머니로써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