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부
다음날 난 혜인이와 같이 버스 타고 있었다. 어제는 술 때문에 차를 못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교복을 예쁘게 차려 입은 혜인이와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즐겁고 기분이 상쾌하였다. 그런데 몇 정거장을 가기도 전에 버스에 오른 어떤 여자애가 혜인이에게 아는 체를 하였다.
“ 어머, 혜인아… ”
“ 너, 민지… ”
“ 반갑다… 여기서 다 만나네… ”
난 살며시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입은 교복이 다른 걸 보니 같은 학교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아는 친구인가 보다. 성인남자인 내가 보는 혜인이 나이의 여자에게 끌리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 애들이 입고 있는 교복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교복이라는 게 강한 인상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 애가 입은 교복이 밝은 색이라 혜인이 보다도 더 화사하게 눈에 띄었다. 역시 혜인이의 친구답게 키도 크고 예뻤다. 유난히 눈에 띄는 건 그 애의 큰 눈과 가느다란 다리였다. 그리고 가느다란 종아리를 감싸고 있는 검은 스타킹을 신은 그 애의 다리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난 그런 걸 좋아한다. 여학생들의 교복 입은 날씬하고 예쁜 다리, 특히 검은 스타킹을 착용한 모습을 좋아한다. 그것은 동생 지은이가 처음으로 중학교에 들어가고 그 애의 교복차림에 스타킹을 신은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부터였다. 그전 까지는 그런 여학생들의 예쁜 모습을 보아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어리게만 보던 동생이 여자로 성숙해 간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동생 지은이가 내가 가장 가깝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여자라는 것 때문일까… 지은이의 교복과 스타킹에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생의 교복모습과 지금 나의 여자인 혜인이의 모습과 입장이 전혀 다르지만 지은이의 그런 모습은 동생으로써 너무도 귀여웠었고, 그리고 혜인이는 항상 내 곁에 있어서 만질 수 있고 느낄 수가 있는 내 여자이기에 더욱 좋았다. 그래서 혜인이의 교복 차림을 처음 봤을 때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되고 가슴이 설레었던 것이다.
혜인이도 옆에 서있는 민지와 똑같은 스타킹을 신고 있다. 그런데 그 애에게 더욱 시선이 가는 것은 왜일까….
혜인이는 나랑 같이 다정하게 서 있다가 갑자기 친구를 만나자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다. 잡고 있던 손을 살며시 놓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듯 나를 그 애에게 소개해 주었다.
“ 우리 오빠야… ”
“ 안녕하세요. 민지예요. ”
“ 응, 반갑다… ”
그런데 혜인이 친구라면 무엇보다 가족관계 정도는 잘 알 것이다. 혜인이에게 오빠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애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다시 한번 더 훑어보듯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혜인이랑 재잘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묵묵히 차창 밖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혜인이랑 얘기를 하던 그 애가 먼저 내렸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사라졌다.
“ 민지는 학교가 가깝네? ”
“ 네… ”
그 애는 집이랑 학교까지 거리가 얼마 안되어 걸어가도 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혜인이가 통학하는 거리가 꽤 된다고 생각되었다. 아무래도 가끔은 내가 혜인이를 위해 태워다 주는 수고를 해야 할 것 같았다.
“ 걱정하지마, 혜인아… 일단 며칠 동안 버스 타고 다녀 보고, 네가 도저히 불편하고 힘들면 내가 매일 태워다 줄게… ”
“ 정말요? ”
“ 응, 혜인이를 위해서라면 그 정돈 해 줘야지… 너무 멀어서 학교 다니기 힘들잖아? ”
“ 고마워요… 저 이제 다 왔어요, 민지 얘기는 저녁에 해 드릴게요. ”
“ 으응, 혜인아 열심히… 알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
“ 네에, 갈게요. ”
난 혜인이가 버스에서 내려 총총걸음으로 바쁘게 걸어가는 모습을 쳐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혜인이도 나를 보며 살짝 손을 들어주었다. 교복차림으로 발랄하게 걸어가는 혜인이의 모습은 너무도 예뻤다. 그런 혜인이를 옆에 두고 민지라는 애를 보고 아까는 왜 그런 생각이 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녁 퇴근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혜인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가 아빠가 올라오신다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혼자있기 심심하다며 나보고 일찍 들어오라고 애교를 부렸다.
“ 오빠, 나아 심심해… 무섭고… ”
“ 응, 알았어. 일찍 들어갈게… 심심하면 컴퓨터나 하고 있어… ”
“ 네에… ”
그리고 전화를 끊고 일 마무리를 지었다. 작업한 것들을 저장하고 컴퓨터를 끌려고 하는데 은정이가 옆에 서있는 것이었다. 난 무심결에 그녀의 날씬한 다리에 눈길이 가며 내려다보았다. 왜 진작에 못 봤던지 오늘따라 잔뜩 멋을 냈는지 검은 바탕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그 때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 아차… ’
혜인이에게 컴이나 하고 있으라고 말한 게 후회되었다. 집 컴퓨터에는 교복 입은 일본 여학생들을 주제로 한 야한 동영상들을 많이 다운 받아 놓았다. 지금쯤은 혜인이가 그런 걸 보고 있을 거란 생각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 저기 진우씨… 퇴근하고 뭐할 거예요? ”
“ 뭐 하긴요. 집에 일찍 가봐야죠… ”
“ 저기…… ”
“ 잠깐만요. 은정씨 내일… 내일 얘기하죠. ”
“ ………… ”
은정이가 나에게 무슨 할말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런 걸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정신이 없어서 은정이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흘러 버렸다.
‘ 만일 그걸 혜인이가 본다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안돼… ’
지금 내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뿐이었다. 난 서둘러 정리를 하고 퇴근을 하였다.
‘ 제발 보지 않았기를… ’
서둘러 아파트에 도착해 초인 종을 눌렀다. 혜인이는 한참 있다가 문을 열어 주었다. 난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혜인이의 얼굴표정부터 살폈다. 나를 맞이하는 혜인이의 표정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혜인이가 야한 동영상을 본 것이 확실해졌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역시나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혜인이는 보았을 것이다. 요즘 애들은 컴엔 도사들이라서 컴퓨터를 능숙하게 잘 다룰 것이고, 그리고 더욱이 혜인이는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다 보니 당연히 나의 컴에 무엇이 저장되어 있는 지 궁금했을 것이다. 컴을 켜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면 쉽게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호기심에 하나 정도는 열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걱정하는 한편으로는 반대로 그런 장면들을 보고 난 후의 혜인이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였다.
난 혜인이의 표정을 살피며 옷을 갈아입었다.
“ 오늘 즐거웠어? ”
“ ………… ”
혜인이는 아무런 말없이 약간 시무룩한 얼굴로 옷을 받아 걸어주고는 이내 저녁 준비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나는 혜인의 표정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말도 않하는 게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무슨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하면 괜히 어색해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리고 욕실로 가서 대충씻고 나왔다. 혜인이는 나에게 많이 실망했는지 밥 먹는 내내 말이 없었다. 이게 다 남자인 나의 잘못이었다. 어떻게 든 수습을 해야만 하였다. 그리고 밥을 다 먹고 나선 설거지는 내가 하기로 자청하고 나섰다.
“ 오빠, 내가 할게… ”
“ 아냐, 오늘 저녁은 내가 치울게… 넌 들어가서 공부해… ”
하며 혜인이를 억지로 방으로 들여보냈다. 이렇게 해서라도 혜인이에게 아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주는 나를 보고 조금이라도 혜인이 마음이 풀어 지기를 바랬고 그런 걸 보는 걸 살짝 눈감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거지를 다해놓고 난 조심스럽게 혜인이의 눈치를 떠볼 생각이었다. 손을 닦고는 혜인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혜인이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난 조심스럽게 다가가 혜인이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러자 혜인이가 고개를 돌렸다. 난 말없이 돌아보는 혜인이의 입술에 입을 가져가 가벼운 키스를 해주었다. 혜인이는 자신의 입속에 들어온 나의 혀를 감아 들이며 강하게 빨아들였다. 그리고 키스를 하고 나서 난 혜인이의 침대에 앉았다.
“ 혜인아, 여기와서 앉아 볼래… ”
“ 네… ”
혜인이는 힘없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일어났다. 그리고 몸을 쭈빗거리며 엉덩이에 눌려져 달라붙은 팬티를 손으로 살며시 떼며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금방 키스를 받아 줄 땐 그래도 풀어진 것 같더니 다시 아무 말이 없었다. 혜인이는 다소곳하게 앉아서 가만히 모아 자신의 아랫배에 살짝 내려놓고 있었는데 괜히 손가락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보아 자기도 나에게 할말이 있는 것 같았다. 혜인이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남자인내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혜인이가 이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오빠, 나도 오빠한테 할 말 있어… ”
“ 아까 너 컴 할 때 혹시… 오빠 컴에 거 봤어? ”
“ 다 봤어, 오빠… 이상한 파일이 있길래… 지저분하게 그게 뭐야, 오빠… ”
“ 미안해… 나한테 많이 실망했지? ”
“ ………… ”
혜인이는 내가 그런 걸 본다는 것에 대해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대답 대신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촉촉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다시금 혜인이의 슬픈 얼굴과 눈에서 죽은 동생 지은이가 생각났다. 슬픈 혜인이의 눈을 볼 때 순간적으로 혜인의 눈이 마치 동생 지은이의 눈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느낌은 내가 꼭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그리고 나서 혜인이를 대하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 같았다. 앞으로는 절대 혜인이를 울리지 말라고 지은이의 눈이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우선 혜인이를 달래 줘야 할 것 같았다. 살며시 혜인이의 손을 붙잡았다. 이해해 달라는 듯이… 하지만 혜인이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해해주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혜인이도 나에게 말도 안하고 몰래 그것을 열어 봤다는 것에 대해 많이 미안해 하는 것 같았다.
“ 이해해요. 오빠… 남자들은 그런 거 다 보잖아… ”
“ ………… ”
“ 저도… 미안해요. 오빠 허락도 없이 봐버려서… ”
“ 난 괜찮아… 혜인이 네가… ”
“ 하지만… 오빠, 난 오빠가 그런 것 보는 거 싫어요. 이제부터는 그 딴 거 안 본다고 약속해 줘요. ”
“ 그래, 이젠 그런 거 절대로 안 볼게… ”
그러면서 혜인이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며 쓰다듬어 주었다. 난 혜인이의 어깨를 감싸며 혜인이를 뒤로 눕혔다. 그리고 다시 혜인이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이렇게 애정을 표현해서라도 혜인이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다. 혜인이는 키스를 하고 나자 이제는 됐다는 듯이 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오빠, 이젠 제가 항상 곁에 있잖아요. 이젠 그런 여자들 보지 말아요. ”
“ 그래 이젠 안 볼게… ”
“ 안돼요, 오빠… 당장 지워 버려요. ”
“ 으응, 알았어… 다신 그런 거 안 볼게… ”
“ 지금… 당장… 빨리요… ”
그러더니 몸을 일으키며 나의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난 어쩔 수 없이 혜인이의 손에 이끌려 안방에 있는 컴 앞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윈도우가 실행되자마자 동영상 파일을 전부 찾아 삭제 해 버렸다. 아까운 것도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혜인이가 옆에 지키고 서 있었고 또 그런 혜인이의 기분을 풀어 주려면 하는 수 없었다. 그리고 컴을 끄고 나니 이제는 혜인이의 기분이 많이 풀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