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보기
1.프롤로그



“…아가씨, 여기가, …기분 좋으신가요?”



“흐으으, …아가, 으응, 아가씨라, 읏, …고 하지, 마.”



“후우, 안이, 무척 뜨겁네요.”



모르는 척 말을 돌리는 남자를 노려보며 물기에 젖은 눈을 깜빡였다.



지나친 쾌감에 흘러내린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역시, 실제보단, 상상이 훨씬, 못하네요.”



눈을 깜빡일수록 고여있던 눈물이 흘러내리자 겨우 남자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떠날 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얼굴.



그러나 그 표정만은 그때와 달리 무척 부드러워져 저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것만 같다.



얼굴은 익숙한데, 그 얼굴이 담고 있는 감정이 너무도 낯설었다.



“이렇게 예쁘게, 후, 울 줄 몰랐는데.”



그러나 부드럽게 올라간 입에서 뱉어내는 말은 퍽 파렴치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얼굴에 홀렸던 정신을 다잡았다.



으으응, 읏.



의지와는 달리 낯부끄러운 신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그가 자세를 바꾸는가 싶더니 아래쪽에서 조금 거칠게 파고드는 감각이 느껴졌다.



아까 무심결에 반응을 보였던 부분을 집요하게 노리는 몸짓이 퍽 자비 없었다.



여유롭게 웃고 있던 얄미운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무슨!응, 무슨 소리, 를 하는, 읏, 거야아…….”



아래에서 계속 쿡쿡 쑤셔지는 쾌감과 흔들리는 몸 탓에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마치 앙탈 부리는 듯한 말투에 되레 놀란 것은 나였다.



나는 열이 오르는 얼굴로 입술을 꾹 깨물며 눈앞의 얼굴을 노려봤다.



그러나 정사에 집중한 그는 내 말조차 귀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



일그러진 얼굴로 그가 이를 악물었다.



흔들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급하게 얼굴을 내려 입술을 찾는 몸짓이 다급했다.



“응, 으응, 흐응!으으응…….”



입술이 맞대어지자 흘러나오던 신음이 목에서 막힌 듯 울렸다.



그러나 아까처럼 그 신음이 부끄럽다든가 하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런 생각이 들 틈조차 없었다.



그냥, 딱 죽을 것 같았다.



찌르고 빠지고 단순한 왕복 운동인데, 심지어 저는 아래에 깔려서 그를 받아내기만 하는 입장이었는데도, 그럼에도 까딱 잘못하면 죽겠다 싶었다.



아니, 그래서 죽을 것 같은 건가?



복상사라는 말이 영 없는 말은 아니었다고, 멍한 정신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흐아, 안, …안 돼…….싫어!”



내가 반쯤 정신을 놓은 사이에도 파도는 계속 몰아치고 있었다.



온몸으로 그 파도를 껴안고 버티던 나는 곧 도망치기 위해 몸을 버둥거렸다.



그 파도 끝에 쓰나미가 몰려올 거란 걸 깨달아 버린 탓이었다.



지금도 충분히 죽을 것 같은데 멈추지 않는 감각이 공포스러웠다.



그 끝을 맞이하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를 움직였다.



남아있던 생존 본능으로 벗어나려고 애썼다.



“하아, 안 됩니, 다.가만히, 후, 계세요…….”



다정하게 휘어지는 눈가가 원망스럽다.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몸을 그가 온몸으로 내리눌렀기 때문이었다.



아, 아, 아아.



말을 잃은 사람처럼, 나는 단말마의 신음만 내뱉으며 몸을 떨었다.



온몸이 곧 다가올 감각을 대비하려는 것처럼 긴장으로 굳어졌다.



눈이 홉뜨이고 입이 벌어졌다.



그가 뭐라 짓씹듯이 중얼거리며 온 힘을 실어 몸을 내리누른 순간, 나는 그대로 절정에 올랐다.



“흐아, 아, 아아앙!”



몸이 통제를 벗어났다.



허리가 활처럼 휘어졌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꼈다.



아래에 박힌 남자의 페니스가 한 번 더 거세게 밀어붙여졌다.



수축한 내벽으로는 그 감각도 과한 쾌감으로 다가왔다.



곧 따뜻한 무언가가 몸 내부를 채우고 내내 벌어져 있던 질구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눈을 떴다.



눈을 감았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을 정도로 까무룩 잠이 들었던 듯싶다.



시야가 선명해지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복근과 가슴팍 덕분에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곧바로 실감하고 말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고개 아래에 베개치고는 딱딱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시선을 돌리니 그의 팔이 내 베개 대신 받쳐져 있었다.



혹시라도 팔이 저릴까 싶어 고개를 살짝 틀자 그가 곧바로 반응했다.



“일어나셨어요, 아가씨?”



“아, 으응.”



그가 몸을 움직이자 시트가 맨몸에 비벼지는 감각이 선명했다.



어젯밤 일을 꿈으로 여길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어졌다.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인지.



나는 아침부터 심란한데 정작 일을 친 그는 얼굴에서 빛이 나 보였다.



포만감에 찬 얼굴로 그가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이 사태를 확실히 정리하기 위해서는 그를 밀어내고 어서 저택으로 돌아가는 게 맞았지만, 그 커다란 몸을 내게 비비적대는 감각이 싫지만은 않았다.



마치 큰 맹수가 내게만 배를 까뒤집고 애교 부리는 기분이랄까.



“아가씨께서 처음이라는 사실을 잊고…, 조금 과했던 것 같아 반성하던 중이었어요.”



“응, 어?어어…….”



반성?



과했…, 뭐, 뭐?



그 의미를 알아채고 얼굴을 붉히는 나를 그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꿈인가, 꿈이겠지?



현실 도피 중인 나를 현실로 끌어오듯 입술을 마주 댄 그가 조그맣게 웃었다.



부정하지 않으시는 걸 보니 처음이신 게 맞다는 뜻이군요.



그 와중에 유도 심문까지 하고 있었단다.



나는 이제 낯선 것을 보는 눈으로 그를 한번 훑어봤다.



“이게…, 뭐 어떻게…….”



“2년 동안, 그 공…, 흠, 아무튼 누가 아가씨를 채 가진 않았을까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너 왜 이래?갑자기, 이거, 진짜 뭐가 뭔지 모르겠어.”



이쯤 되면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걸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분명 헤어지기 전날까지도 무뚝뚝한 얼굴로 내게 말 한마디 먼저 안 걸었을 뿐 아니라 마지막 인사마저 딱딱하기 그지없게 남겨놓고 떠났으면서.



이 괴리감은 어쩔 거야, 도대체?



물론 어젯밤 연회장에서 마주친 그는 지금의 상태에 더 가까웠던 것 같긴 하지만, 남들의 시선이 있는 곳이라 그런 줄 알았지 정말 이렇게 180도 뒤바뀌었을 줄이야.



“이제 앞으로 그 새끼만 처리하면…….”



“응?뭐라고?”



내 생각에 빠져 웅얼대는 그의 목소리를 전부 다 듣지 못했다.



뭘 처리한다고?



그러나 그는 여전히 기쁘게 웃는 얼굴로 다시금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너무 예뻐서.



목덜미에 간질간질한 숨이 느껴졌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낯설다.



얼굴만 아니었다면 전혀 다른 남자인 줄 알았을 거다.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자부했던 하르텐 엔데버, 이 소설 속 진남주가.